[오늘의 이슈]교육정책 ‘경제논리 우선’ 논란 확산

  • 입력 2002년 2월 1일 18시 02분


진념(陳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한 포럼 연설에서 “우리 교육은 지역별 학교별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평준화 일변도로 이끌려 왔다”며 “차라리 일제 강점기 때 교육정책이 나았다”고 발언한 데 대해 교직단체와 학부모단체들이 사과를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은 “교육문제를 경제 논리로만 해석해 경쟁만을 강조하는 것은 책임 있는 당국자로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진 부총리는 1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고교 평준화 폐지를 주장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이상주(李相周) 교육부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진의를 설명하는 등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교육은 경제 논리로 풀자〓진 부총리의 관심이 최근 교육문제에 집중된 배경에는 지난해 말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값 폭등 사태가 숨어 있다. 재경부는 ‘1·8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수도권 인근 도시의 고교들이 평준화로 전환돼 학부모들이 강남으로 몰린 것을 ‘주범’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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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념 부총리 現교육제 비판

진 부총리는 이 보고를 받고 경제 총괄 부처의 관점에서 교육정책을 근본부터 검토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부 관계자는 “국가 경제를 책임질 인재 육성, 공교육비 사교육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할 때 교육문제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평준화 정책으로는 국가를 먹여 살릴 5%의 우수 인재를 키워낼 수 없고 교육도 ‘서비스산업’인 만큼 조기 유학을 보내거나 사교육비를 쓸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재경부는 평준화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이 많아 완전히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고 평준화 정책의 ‘외곽’을 때리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평준화정책이 적용되지 않는 자립형 사립고 같은 학교 설립을 확대해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

특히 외국인학교의 설립 및 입학 요건을 완화해 수도권 등 지방 중소도시에 외국인학교 설립을 쉽게 하고 입학 조건도 해외 거주 5년 이상에서 3년 이상으로 완화, 외국에 유학 계획을 세운 학생들에게는 입학을 자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교육자치권을 현재 시도 단위에서 시군 단위로 넘기고 궁극적으로 학교별로 교사의 봉급과 교과과정을 자율화해 교육서비스를 차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원·학부모단체 반발〓전교조는 1일 성명을 내고 “안착돼 있는 고교평준화 정책의 폐지를 주장하고 자립형 사립고 운영을 최소화한데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은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소수 엘리트만이 국민으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며 “다수 국민의 교육권을 외면한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참교육학부모회도 “교육 위기는 평준화 때문이 아니라 교육 투자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며 “강남 아파트값 폭등은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인 만큼 경제부총리는 모든 책임을 교육문제로 떠넘길 것이 아니라 경제 살리기나 제대로 하라”고 비난했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 김정명신씨는 “평준화정책이 옳으냐 그르냐의 차원을 떠나 교육의 질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경제부총리가 부처간 협조가 아니라 외부 발언 등으로 불쑥 불쑥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사자인 교육인적자원부도 진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상당히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한 간부는 “그동안 교육 여건 개선 등을 위해 예산 지원을 요청해도 비협조적이었다”며 “모든 책임을 교육부에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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