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현구]官주도 국정평가는 감독이 심판보는 꼴

  • 입력 2005년 12월 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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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정책평가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정책과정의 개선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관리적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적 통제’로 대의적 책임을 확보하는 정치적 기능이다.

전자 못지않게 후자가 강조되고 있는 게 현대적 평가의 경향이다. 오늘날 정책평가는 국민여론을 형성하고 국정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국무조정실이 민주적 통제에 역행하는 관(官)주도적 ‘국정평가기본법안’을 정기 국회에 상정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평가를 받아야 할 기관의 수장인 국무총리와 주요 부처(행정자치부, 기획예산처, 중앙인사위원회, 국무조정실)의 장관들이 각각 평가최고기구인 국정평가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을 맡고 있다. 운동경기에서 한쪽 팀의 감독에게 심판을 맡긴다면 과연 누가 그 경기의 운영과 결과에 승복하겠는가. 분식(粉飾)평가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들은 또 표심(票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직 공무원’이다. 국민이 여기서 나오는 평가보고서를 정권홍보 자료쯤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정평가위원 14명 중 9명이 민간인이므로 ‘민간 주도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은 대통령이 임명하기 나름이므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될 수도 있다. 혹시 ‘관 주도형’이 평가의 실효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편다면 이는 본말(本末)이 뒤바뀐 관리주의적 명분에 불과하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평가 관련기관들 간에 별도의 강력한 평가운영협의체를 구성하는 게 올바른 길일 것이다.

2001년에 시행된 현행 ‘평가기본법’에 의하면 정책평가위원회는 위원장 1인을 포함한 30인 이내의 위원 중 국무조정실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간인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민간주도형 평가체제를 다시 관주도형으로 바꾼다는 것은 분명 민주화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나아가 평가의 현대적 경향을 외면하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평가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감사에서와 같은 수준의 기능적 독립성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통합평가체제를 지향하는 새 법안이 당면한 평가 애로에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최근 행정기관에서는 “평가 때문에 일 못 하겠다”고 할 정도로 중복 및 과잉 평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형편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평가의 물리적 통합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평가 유형 간에 상호 보완적인 연계 메커니즘을 설정하여 피평가기관의 부담을 줄이고 평가의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능적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새 법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성과관리에 매몰되어 현행 ‘한국적’ 기관평가 모형을 포기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기관평가는 대상기관의 주요정책(형성, 집행, 성과)뿐만 아니라 이를 추진하는 관리역량과 추진결과에 대한 국민만족도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다원적 평가이다. 이러한 기관평가의 틀 속에서 성과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계량적 성과지표에 잡히지 않는 정책기획 업무가 많은 중앙행정기관을 성과 위주로만 평가한다면 그야말로 ‘평가를 위한 평가’의 형식주의로 흐르기 십상이다.

1990년대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성과중심의 정부업무 평가제도 도입이 확산됐다. 우리도 2003년부터 기획예산처가 성과관리제도를 도입했고, 국무조정실이 국정평가기본법안 제정을 추진해 왔다.

모든 제도에는 그 나름의 맥락과 속성이 있다. ‘총괄조정형’인 국무조정실 심사평가를 굳이 성과관리의 방식으로 운영할 바에는 차라리 기획예산처 주도의 ‘예산 연계형’ 평가체제로 전환하는 게 순리일지 모른다. ‘국정평가기본법안’은 공공관리의 전략과 민주적 통제에 관한 것이다. 국회가 이 법안이 미칠 파장을 제대로 헤아려 주기 바란다.

김현구 성균관대 교수 한국행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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