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식당-술집 담배 판매 금지 말만 앞세웠다

  • 입력 2001년 10월 17일 19시 01분


16일 오후 7시 대전 서구 월평동 K식당. 종업원과 한 손님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주머니! 여기 담배 한 갑 주세요.” “안돼요. 담배 팔면 걸리는 것 아시잖아요.”

“그럼 좀 사다 주세요.” “사다 주는 것도 안돼요.”

“그러면 술 먹다 담배 사러 나가란 말이에요?”

담배 소매점 외에는 담배를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한 개정 담배사업법이 올해 7월 시행된 이후 식당이나 술집 등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런 실랑이 끝에 식당 주인이나 손님이 내뱉는 푸념은 한결같다.

“도대체 뭐 하자는 법이야. 이런다고 담배 피울 사람이 안 피우나.”

▽법개정 경위〓담배사업법 개정을 추진한 재정경제부는 정작 이 개정법이 ‘원치 않은 아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입장이다.

당초 국회에 제출한 개정법안은 담배 판매를 할 수 있는 서비스 업소 종류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국회 심의과정에서 아예 식당 등 서비스 업소에서의 담배판매 자체를 금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

재경부 관계자는 “법안 심의를 한 국회의원들 대다수가 담배를 판매할 수 있는 서비스 업종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보다 모든 서비스 업소에서 담배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 게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다”고 말했다.

기존의 담배사업법은 ‘소매인이 아니면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단서 조항으로 ‘다만 서비스업 등을 영위하는 자가 소매인에게서 매입한 담배를 자기 고객에게 구입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돼 있었다.

▽‘담배 심부름’도 단속 대상?〓개정된 담배사업법은 소매인이 아닌 경우 담배를 팔면 2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 어디까지를 ‘판매행위’로 봐야 할지 명확한 지침이 없어 혼선이 일고 있다.

법이 개정된 후 재경부측과 담배인삼공사 홈페이지에는 “담배 심부름도 판매인가요?” “무료로 주는 것도 안되나요?” 등의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재경부는 “법률가의 자문을 구한 결과 담배를 사다주는 것과 무료로 주는 것은 일종의 서비스 행위이지 판매행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담배 심부름’은 단속 대상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일선 행정기관에서는 개정 법이 발효된 지 3개월이 넘도록 구체적인 시행지침을 받지 못해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담배판매 단속과 관련해 어떤 지침도 받은 바 없다”며 “하지만 법안의 취지에 비춰볼 때 담배 심부름도 판매행위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많은 식당에서는 아예 ‘담배 판매는 물론 담배 심부름도 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어 놓고 있다.

▽명분은 ‘국민건강’〓개정 담배사업법은 식당 등에서 담배 판매를 금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국민 건강’을 내세우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한국담배소비자연맹 한종수(韓宗秀) 사무처장은 “흡연자들에게 담배는 필수적 기호품”이라며 “식당 등에서 담배를 팔지 않는다고 해서 흡연자가 담배를 끊을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시민들에게 불편만 주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상민(李相珉) 변호사는 “담배를 사다놨다가 돈을 받고 팔면 불법이고 ‘담배 심부름’을 해주면 불법이 아니라는 식의 법 규정과 법 해석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식당 등지에서 담배를 팔지 않으니 아무래도 담배를 덜 피우게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원 김모씨(38)는 “서비스 업소에서 담배를 구하기 힘드니 귀찮아서라도 참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어떤 식으로든 담배를 사서 피우는 것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흡연을 줄이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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