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수해주민 지원대책 허술

  • 입력 2001년 7월 25일 18시 54분


큰비로 수해 피해를 본 권순희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큰비로 수해 피해를 본 권순희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상처는 10여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었다. 14일 밤부터 내린 집중폭우로 수재민들은 삶의 터전과 생계마저 잃은데다 정부의 안일한 지원정책으로 인해 두 번 울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 수해지역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동대문구 휘경동,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를 돌아보았다.

▽신림동〓구석구석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 문을 굳게 닫은 상가,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허물어진 건물들…. 25일 둘러본 신림6동 신림시장 일대는 폐허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수재민들이 현재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수리비와 위로금 명목으로 피해 가정에 일률적으로 지급한 90만원. 그나마 350여 가구의 상가는 지원 대상에서도 빠졌다. 현 재해구호 및 복구비용에 관한 대통령령에 주택 피해만이 대상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

이 일대 상가 대부분은 30∼40년 전부터 영세상인들이 자리잡아 온 무허가 건물들이라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30여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해온 김모씨(55)는 “상인들은 그나마 쥐꼬리만한 위로금도 못 받았다”며 “게다가 책 몇권 물에 잠긴 피해만 본 사람이나 몇억원씩 손해본 사람이 일률적으로 90만원을 받는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지원정책의 허점을 꼬집었다.

25일 현재 관악구청이 파악한 신림동 일대 피해 상가는 351건. 피해액만도 40여억원에 육박한다.

관악구청 관계자도 “7억1000만원의 피해가 난 78평짜리 공장이나 장판이 물에 젖는 정도의 피해에 그친 집이나 똑같은 지원금이 나가는 것은 체계적이지 못한 재해대책 및 지원 현실을 반영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휘경동〓주택 1300여 채가 물에 잠긴 서울 동대문구 휘경1동. 25일 오후 이 일대 주택가는 햇볕에 말리느라 내놓은 가구와 책 옷 등으로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이 걸어다니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골목에 옷장을 꺼내놓고 곰팡이를 닦던 주부 김모씨(38)는 수해 이야기를 꺼내자 눈물부터 흘렸다. 반지하 단칸방에 전세금 1700만원으로 7년째 살고 있다는 김씨 부부는 98년 물난리를 겪은 뒤 옷장과 가전제품을 새로 장만했다가 이번에 물난리로 또 잃었다. 임신 3개월인 김씨는 정신적 충격도 겹쳐 건강까지 해쳤다.

김씨는 “위로금으로 90만원을 받았지만 옷세탁비 가전제품수리비 등 앞으로 나갈 돈이 수백만원은 넘을 것”이라며 “구청에서는 가전제품을 무료로 고쳐준다고 했지만 냉장고나 텔레비전을 수리센터로 옮길 수 없어 수리업자를 불러 고쳤다”고 말했다.

이 일대 수재민들은 대부분 반지하 세입자들이었다. 주민들은 “10여년 전 집을 지을 때 정부에서 반지하를 만들라고 해서 그렇게 지었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며 한숨지었다.

▽대림동〓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 다세대주택 지하 1층에 세들어 살고 있는 황모씨(45)는 며칠 전 집안의 물을 모두 퍼내고 장판을 새로 교체했지만 곰팡이 냄새 때문에 잠을 설칠 정도. 이불 몇 채와 장롱을 제외한 나머지 살림살이는 모두 버렸다.

황씨는 “시에서 주는 위로금만으로는 복구비에 턱없이 부족하다. 앞으로 먹고 살 일이 더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이곳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상가나 공장을 운영하다 침수 피해를 본 주민들은 그나마 위로금도 못 받고 있다.

상가건물 지하에서 3년째 모피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박모씨(39)는 공장 전체가 침수돼 1억100여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냈다. 20년간 피땀 흘리며 모은 재산이 한순간에 날아간 것. 공장 이곳저곳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젖은 제품을 말리던 박씨는 “서울시와 구청에서 두차례 피해조사를 해 갔지만 아직까지 아무 얘기가 없다. 자연재해라서 보상금이 아닌 구호금을 준다는데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며 씁쓸해했다.

인근에서 축산물 도소매업을 하는 홍정식씨(52)도 지하 냉동창고가 침수되면서 10여t 분량의 고기가 모두 썩어 1억2500여만원 가량의 피해를 봤지만 보상받을 길이 없어 역시 애태우고 있다.

<이권효·장기우·김정안기자>sapi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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