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民-民갈등'

  • 입력 2001년 6월 19일 18시 38분


전남북 지역 곳곳에서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둘러싸고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및 환경단체 사이에 갈등이 일고 있다.

이달 말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유치 공모 마감을 앞두고 지난주 전남 영광군, 강진군, 진도군과 전북 고창군의 일부 주민들이 잇따라 유치 청원서를 자치단체에 제출했다. 그러자 그동안 반대운동을 벌여온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대리서명과 금품수수 의혹을 제기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자치단체와 의회는 지역민들간 분열을 막기 위해 청원서를 반려하거나 처리장 유치 거부 입장을 밝히는 등 수습에 나서고 있으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처리장 건립 추진경위〓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은 총 1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초대형 사업.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영광 울진 월성원전 등지에서 나오는 작업복과 장갑, 각종 폐부품 등 중·저준위 폐기물이 2008년부터는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고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추진해왔다.

한전은 처리장이 들어서는 자치단체에 특별지원사업비 1672억원, 소득증대 및 공공시설 지원사업비 914억원 등 총 2929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부지 공모를 통해 후보지가 결정되는 대로 건설에 착수, 2008년까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짓고 2016년까지 사용 후 연료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다.

▽지역민 갈등〓전남북 지역에서 자치단체에 처리장 유치 청원서를 낸 곳은 모두 4곳. 영광군 주민들이 11일 2만5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군에 청원서를 제출한 데 이어 13일에는 전북 고창군 주민 1만2400여명이 청원을 했다. 또 15일에는 강진군 주민 1만6300여명과 진도군 주민 6100여명이 각각 군과 군의회에 청원서를 냈다.

이 가운데 ‘민-민(民-民)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은 영광군 지역으로 이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유치위가 대리서명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핵폐기장반대 영광대책위원회 김성근(金性根)공동의장은 “4개의 원전이 가동중인 이곳에 처리장이 들어설 경우 영광군 지역은 사실상 ‘핵 공단’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며 “서명서에 수백명의 동일인 필체가 발견된 만큼 대리서명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유치위원회 김영득(金寧得)위원장은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대신 써주었을 뿐 대리서명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지난해 국내에서 건설예정인 폐기물처리장과 비슷한 일본의 시설을 둘러봤는데 안전성에는 하등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처리장을 유치할 경우 수천억원에 이르는 지원금으로 지역개발에도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강진군 인터넷홈페이지에 ‘서명자에게 돈이 건네졌다’는 익명의 글이 게재돼 전남도가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진도군 지역에서는 농민회와 청년단체들이 “유치위의 청원은 일부 주민들의 뜻에 불과하다”며 유치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지역 대책위는 21일 광주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뒤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을 항의방문할 예정이다.

▽자치단체 입장〓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유치 청원서를 접수한 자치단체들은 주민 갈등이 확산되자 단체장이 직접 나서 유치 반대입장을 밝히거나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청원서를 반려하는 등 ‘갈등 봉합’에 나서고 있다.

강진군이 18일 군정조정위원회를 열고 처리장 유치 반대를 공식 천명한 것을 비롯해 진도군도 이날 “청정해역과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에 처리장을 유치할 수 없다”며 청원서를 반려했다. 전북 고창군도 이미 두차례나 기자회견을 통해 반대의사를 표명했으며 영광군은 자료보완을 이유로 청원서를 반려할 계획이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유치신청은 주민청원이 있을 경우 단체장이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아 산자부에 신청토록 돼 있다.

<광주〓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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