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교수사회 경쟁시대…연봉 1500만원까지 차이

  • 입력 2001년 5월 17일 18시 45분


‘월 화 수 목 금 토’.

경기 수원시 아주대 기계 및 산업공학부 이종화(李鍾和) 교수의 달력에는 일요일이 없다.

강의와 논문 준비 때문에 주말을 잊은 지 오래다.

오전 9시반 연구실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면 학생들이 보낸 메일이 10여통씩 도착해 있다. 강의시간의 질의응답과 달리 답변에 1시간 정도 걸리는 질문들이다.

강의 준비는 몇 배 더 공이 든다. 지난해 ‘자동차공학’ 강의 때는 사이버 강의를 시도했다. 자동차 디자인과 엔진 등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컬러사진과 표를 제작하고 강의 내용을 직접 녹음하느라 꼬박 6개월이 걸렸다.

논문 지도를 받기 위해 연구실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대학원생들을 상대하는 짬짬이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을 쓰다보면 밤 12시가 훌쩍 넘어간다.

2000학년도 이종화교수 업적평가표

평가영역평가항목최종평가결과

교육

강의시간90.00
수업평가65.33
대단위강의3.75
새로운교과목개발0.00
교재발간0.00
학생지도실적20.00
석사배출실적40.00
박사배출실적40.00
소계259.08

연구

국내학회학술지110.00
국제학술지240.00
특허0.00
국내학술회의논문발표11.00
국제학술회의논문발표40.00
연구비수혜액163.03
연구비과제수68.31
소계632.34

봉사

교내봉사17.00
교외봉사45.00
소계62.00
총계953.42

“교수가 ‘철밥통’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피를 말리는 무한경쟁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적표 받는 교수들〓‘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강의의 질이나 연구업적에 관계없이 정년을 보장받던 교수 사회가 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상아탑’도 예외일 수 없다는 논리로 ‘교수업적평가제’ ‘연봉제’ 등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181개 사립대학 중 37개교(20.4%)가 연봉제, 141개교(81.7%)가 교수업적평가제를 도입했다. 대부분의 대학이 ‘교육’ ‘연구’ ‘봉사’ 등의 분야에서 교수의 업적을 평가하고 있다. 평가 결과를 인사(119개교), 연구비(50개교), 성과급(59개교)에 반영하고 연구년제(44개교)의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교수들은 초조한 심정으로 ‘성적표(업적평가)’를 기다린다.

아주대 관계자는 “평가제 도입 초기에는 ‘성적표’를 집으로 발송했는데 ‘아내와 자녀들이 보고 크게 실망하더라’는 항의가 있어 요즘에는 연구실로 배달하고 있다”며 “점수에 따라 연봉이 1500만원 넘게 차이 난다”고 말했다.

▽10년된 강의 노트는 옛말〓성균관대 박재완(朴宰完·행정학) 교수는 “강의 계획서와 강의 노트를 학과 홈페이지나 학생들의 e메일에 미리 띄우기 때문에 10년, 20년째 똑같은 노트를 사용하는 교수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강의노트를 공유하니 시간이 절약돼 진도도 2배 이상 빠르다는 것.

시험문제도 학과 홈페이지에 공개되기 때문에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과연 마케팅이란 무엇인가’라며 말만 바꿔 퇴직 때까지 같은 시험문제를 내는 교수의 이야기도 이미 ‘전설’이 됐다.

각종 첨단매체를 활용하는 교수들도 있다.

서강대 강호상(姜鎬相) 경영대 교수는 “1년 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데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주느라 강의만 할 때보다 업무량이 2, 3배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곽승엽(郭承燁) 교수는 이번 학기에는 겨울방학 때 꼬박 매달려 만든 동영상 애니메이션이 포함된 파워포인트를 강의에 활용하고 있다. 같은 과 김재필(金在弼·재료공학부) 교수는 지난달 자신의 강의를 비디오로 담아 본 뒤 문제점인 부산 사투리와 빠른 말씨를 교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중해야 할 평가〓98년부터 학부별로 평가 점수가 뛰어난 교수들을 선정해 ‘최고 교수상’을 시상하고 있는 성균관대는 수상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명단에 들지 못한 교수들이 “평가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

교수노조준비위원장을 맡고있는 서울대 최갑수(崔甲壽·서양사) 교수도 “교수의 업적을 계량화하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 평가제가 ‘입맛’에 맞지 않는 교수를 축출하는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李鉉淸) 사무총장은 “학문의 특성을 고려해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교수평가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진영·박용기자>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