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무차별 경지정리…고인돌이 사라진다

  • 입력 2001년 1월 14일 18시 48분


선사시대 유물인 고인돌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영국의 스톤헨지 등과 함께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거석문화로 꼽힌다. 그런 고인돌이 당국의 허술한 유적관리와 주민들의 무분별한 경지정리 등으로 수백기가 훼손되거나 자취를 감추고 있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분포돼 있는 전남지역의 훼손 정도가 심각한 실정이다.

지난해 11월 유네스코가 전남 화순과 전북 고창, 경기 강화 등 3개 지역의 고인돌군(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후 고고학계에서는 고인돌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문화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고인돌 현황〓전남지역은 전국에 분포된 고인돌 2만9000여기 가운데 65%인 1만9000여기가 몰려 있는 한반도 최대의 고인돌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국가사적 410호인 화순군 도곡면, 춘양면 일대 고인돌군 596기를 비롯해 장흥군 2509기, 고흥군 2055기, 나주시 1210기, 보성군 1606기 등 1000기 이상 분포지역이 8개 시 군에 달한다.

이들 고인돌군은 청동기시대 생활상을 반영하듯 남해안과 영산강 보성강 섬진강 등지에 고루 분포돼 있고 이 일대에서 석촉 무문토기 비파형동검 등 수천점의 유물이 출토돼 선사유물의 보고(寶庫)로 평가받고 있다.

▽훼손실태〓전남대 인류학과와 진도민속예술연구회가 최근 진도지역에 대한 고인돌 유적 현장조사 결과 87년 목포대 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361기 중 241기가 사라져 현재 120기만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나주시가 99년 목포대 박물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133개군(群) 1041기에 이르던 고인돌 가운데 10% 가량인 101기가 훼손된 것으로 드러났다.

89년 목포대 박물관이 지표조사를 벌여 2500여기가 분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 장흥지역에는 탐진댐 건설사업 등으로 안양면, 용산면 일대 고인돌 100여기가 유실되거나 훼손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 순천시 승주읍 쌍암면 봉덕리에선 한 주민이 83년 경지정리를 하면서 25기의 고인돌을 땅속에 파묻어 형체 일부만 드러나 있는 사실을 최근 목포대 고고학 조사반이 확인하기도 했다.

▽보존대책〓고인돌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우선 주민들의 유적 보존의식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경지정리나 농업용수로 등을 개설하면서 공사에 지장을 줄 경우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고인돌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땅속에 파묻는 경우가 많다.

당국의 무관심도 큰 문제다. 전남지역의 경우 1만9000여기 가운데 1084기와 주변 3만3170평에 대해서만 문화재로 관리하고 나머지는 지정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관리를 소홀히 해 현재 훼손되거나 사라진 고인돌의 현황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남아 있는 고인돌이라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가 정확한 지표조사를 벌인 뒤 관리대장을 만들어 훼손여부를 점검하는 등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이영문(李榮文)교수는 “전 세계에 약 5만5000여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고 그 절반 이상이 한반도에 몰려 있다”며 “각 자치단체가 고고학 전문가나 학예연구사 등을 전문직으로 채용해 지역 내 매장문화재를 관리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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