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살린 사람들 4]다나카 야스오 日나가노현 지사

  • 입력 2002년 4월 28일 18시 25분


일본 나가노(長野)현 나가노시에 있는 나가노 현청(縣廳). 1층에는 현민 홀(민원인 대기실)이 있고, 그 옆에 전면 유리창으로 칸막이를 친 별로 크지 않은 사무실이 하나 있다.

여기가 바로 작가에서 지사로 변신해 지방행정에 개혁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46) 나가노현 지사의 집무실이다. 다나카 지사는 일본 47개 도도부현 지사 중 가장 나이가 적다.

‘1층 집무실’은 다나카 지사의 선거공약이었다. 주민들 누구나 지사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리알 행정’을 펼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관련기사▼

- 학자가 본 다나카 지사
- 다나카지사 인터뷰

11일 오후 4시. 다나카 지사는 직원 7, 8명과 둘러앉아 뭔가를 열심히 논의하고 있었다. 습관이 됐는지, 창 밖으로부터의 시선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2000년 10월 15일 그가 지사에 당선됐을 때 온 일본이 떠들썩했다. “나가노현을 바꾸겠다”며 그가 출마의사를 밝힌 것이 8월 하순. 선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때였다. 그는 돈도 조직도 없는 상태였다. 상대방은 막강한 부지사 출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그의 압승이었다. 58만 대 47만 표.

그를 도운 것은 자발적으로 생겨난 자원봉사자 단체들이었다. 언론은 그의 당선을 ‘주민에 의한 선거혁명’ ‘관(官) 주도에 민간이 반기를 들었다’고 보도했다.

민선지사를 선출하기 시작한 1947년 이래 54년 동안 나가노현은 3명의 지사가 장기 집권을 했다. 그런 영향으로 나가노현은 현의회, 경제계, 교육계, 시정촌(市町村)장 등 힘깨나 쓰는 자리는 모두 고령자가 차지하고 있는 ‘노인공화국’으로 불렸다. 오랜 세월 누적된 주민들의 염증이 40대 지사를 선택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는 등청 첫날부터 뉴스의 초점이 됐다. 다나카 지사는 청사 안 구석구석을 돌며 명함을 돌렸다. 그러나 ‘터줏대감’격인 기업국장은 “사장이 부하에게 명함을 돌리는 회사는 망해 버린다”며 지사가 준 명함을 면전에서 구겨버렸다. ‘박힌 돌’을 뽑아낼지도 모르는 ‘날아온 돌’에 대한 무언의 불만도 들어있었다. 이 장면이 TV에 방영되자 현청에는 수천통의 격분한 메일과 전화가 쇄도했다. ‘기업국장은 나가노현의 수치’라거나 ‘민선 지사에게 거역하려면 그만두라’는 내용이 많았다.

다나카지사를 얘기할 때 ‘탈(脫)’이라는 단어를 떼어놓을 수 없다. 그는 지금까지 ‘탈 댐 선언’(2001년 2월) ‘탈 기자클럽 선언’(2001년 5월) ‘탈 맨션 선언’(2001년 12월)을 잇달아 내놓았다.

‘탈 댐 선언’은 “앞으로 가능한 한 콘크리트 댐은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나가노현에 예정돼 있던 몇 개의 댐 공사를 실제로 백지화했다. 인공 댐을 만드는 대신 준설이나 제방보강으로 치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탈 기자클럽 선언’을 통해서는 회원제로 운영하는 기자실을 폐쇄하고 그 대신 ‘표현센터’라는 것을 만들어 누구라도 기자회견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탈 맨션 선언’은 자연파괴를 막기 위해 일본 제일의 별장지인 가루이자와(輕井澤)에 맨션건설을 자제해 달라고 촉구한 것이었다.

이들 선언은 사전협의를 중시하는 현청 공무원과 의회 관계자 및 건설업체, 개발이익을 기대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인기영합자’ 혹은 ‘히틀러’라는 악평까지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뜻을 굽힐 생각은 더더욱 없다.

“나는 퍼블릭 서번트(Public servant·공복·公僕)다.”

다나카 지사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다. 공복으로서 주민들의 의견을 행정에 반영하고 주민의 처지에서 행정을 펼치며, 주민에게 행정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유독 각 마을을 돌며 주민과의 대화를 중시하고 있는 것은 그런 뜻에서다. 미리 면담 신청을 받아 추첨으로 선정한 주민들과 지사실에서 직접 대화도 한다. 그만이 볼 수 있는 e메일과 팩스번호도 공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취임 후 1년 반 동안 “화려하기만 했지, 실속 있는 일을 한 게 뭐 있느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주민들이 현의 행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이 점은 대부분이 인정하는 대목이다. 다나카 지사는 “이제까지는 씨를 뿌렸으니 앞으로는 거두겠다”며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그가 취임한 지 1년이 되던 지난해 10월 아사히신문이 현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그를 지지한다’는 답이 65%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 17%를 크게 앞섰다. 지지 이유는 ‘행동력’ ‘친근감’ ‘신선함’의 순이었다.

다나카 지사의 ‘실험’은 곧 ‘일본 정치’의 구각을 깨는 실험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다나카 지사 말말말▼

▽나가노 현이 원래 갖고 있던 유연하고 상쾌하면서도 자유활달한 논의를 회복하기 위해, 나는 입후보했다.(2000년 9월 지사 선거운동 일성)

▽크리스탈같은 일본처럼, 숨기고 감추는 것이 없는 정치를 하겠다.(10월 15일, 당선축하연)

▽‘크리에이티브 콘플릭트’라는 단어가 있다. 나는 ‘창조적 갈등’ ‘건설적 논의’라고 번역한다. 현청 직원, 현의회, 현민들이 좋은 의미의 긴장관계를 갖고, 현민 한명 한명이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나가노현을 지향하겠다.(10월 26일 첫등청 인사)

▽지금은 ‘온 더 잡 트레이닝’(업무훈련) 중이다. (11월 24일 취임 1개월 기자회견에서 직원들이 신임지사의 업무스타일에 당황해하고 있다는 질문에)

▽매스컴 외무성 국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국민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무상으로 (그녀의) 매스컴 담당관이 되고 싶다.(2001년 6월, 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에 대해)

▽강권적이다, 방법이 틀리다, 다나카 야스오가 이상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다른 시스템을 제안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한다면 다른 나라나 다른 혹성에서 사는 것이 낫다.(2001년 6월 현지 학생신문에서)

나가노〓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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