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반환 D-16]역대 총독 이야기

  • 입력 1997년 6월 15일 08시 21분


『식민지에서 총독의 위상은 옥황상제에 버금간다.그가 가는 곳에는 항상 모든 사람이 기립하게 되어 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의 뜻은 거역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지난 47년부터 10년간 홍콩총독으로 재임했던 알렉산더 그랜섬이 회고록에서 총독의 권력에 대해 말한 부분이다. 1백55년간에 걸친 영국의 식민통치기간에 재임했던 홍콩총독은 1843년에 부임했던 초대 헨리 포팅어에서부터 28대인 현재의 크리스 패튼에 이르기까지 모두 28명. 총독은 명의상 홍콩에 주둔하는 3군의 총사령관이다. 홍콩은 여왕의 칙령에 의해 통치되어왔다. 총독은 모든 문관과 무관의 복종과 협조를 받을 권한을 갖고 있다. 때문에 영국군 주둔군 사령관은 총독에게 병력현황과 방위업무 현황을 수시로 보고하게 되어 있다. 총독은 또 당연직 입법부 수장이기도 했다. 이 규정은 현 패튼총독의 정치개혁 조치로 삭제됐지만 27대 총독까지 입법부는 총독의 관할하에 있었다. 역대 총독중 중국인들에게 가장 원성을 산 인물은 12대 블레이크총독. 1898년 신계지역을 99년간 조차한 인물이기도 한 그는 중국의 문화재를 다수 본국으로 빼돌렸으며 심지어 문화재급 고가옥의 담을 헐어 아일랜드에 있는 자신의 집을 치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대 총독이었던 마크 영은 가장 불행했던 총독으로 꼽힌다. 41년 9월에 부임한 그는 부임 3개월만에 홍콩이 일본에 함락되는 바람에 그후 3년8개월을 일본군 포로로 잡혀있어야 했다. 한편 초대 총독 포팅어는 남경조약으로 홍콩섬을 영구할양받고 중국으로부터 전쟁 배상금 2천만파운드까지 타냈던 인물. 그러나 그는 당시 중국인 사회의 풍습을 인정해 「3처4첩」을 승인하는 조례를 만들기도 했다. 홍콩총독은 60년대 이전에는 영국 식민지부의 고위 관리들이 파견됐으나 60년대 후반 식민지부와 연방사무부 및 외교부가 통합되면서 직업 외교관들이 임명되기 시작했다. 71년부터 82년까지 재임한 25대 머리 매클레호스총독이 대표적인 경우. 역대 총독중 처음으로 북경을 공식 방문했던 그는 당시 실력자 鄧小平(등소평)을 만나 홍콩 주권반환 협상을 실질적으로 시작한 인물. 26대 에드워드 유드는 영국 외교부에서 가장 정통한 중국통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재임중 심장병으로 사망해 역대 총독중 최초의 순직자가 됐다. 보수당 당의장 출신인 현 패튼총독은 지난 92년 취임할때 백색제복과 깃털 달린 삼각모로 되어있는 총독의 관복을 거부하고 평상의 양복차림으로 취임식에 참석해 화제를 낳았다. 그러나 그는 취임후 실시했던 일방적인 민주개혁 조치로 역대총독중 중국으로부터 가장 비난을 많이 듣는 총독이기도 하다. 〈홍콩〓정동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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