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띄우는 편지]『외국모습 바르게 보는눈 갖자』

  • 입력 1997년 1월 21일 20시 14분


준환아. 지난해 12월초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너희 집에 머물며 시원스럽게 생긴 너를 보고 이모는 마음이 흐뭇했단다. 이모는 아들이 없어 더 그랬을 터이지만 이제 어엿한 고등학생이 된 네 모습을 보니 대한민국의 장래를 보는 듯 든든했다. 그러나 잠깐씩 상면하는 이모를 보는 네 눈빛은 호기심이 가득한 것이었다. 네가 말은 안해도 이모를 이방인처럼 여기는 듯 했고 태국을 뭔가 지저분하고 질병이 많은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모는 세계화 국제화시대가 다가오는 만큼 준환이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단다. 비록 태국이 매춘관광이니 보신관광이니 하는 것들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 태국은 이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이모는 세상을 보는 네 눈을 조금이나마 넓혀주고 싶구나. 한국의 일부 사람들이 경제 사회적으로 후진국으로만 알고 있는 태국은 실제 유구한 역사와 역동하는 많은 산업들이 있단다. 물론 이곳에도 국민총생산 수준에 비해 너무 높은 고층건물들을 짓고 거기에다 외국의 설계사와 유리 등 값비싼 외장재를 수입해 외화를 낭비하는 등 과소비 풍조가 만연하고 있지만 말이다.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는 짧은 편지글이니만큼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다. 단,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객관적인 나름의 지식을 쌓은 뒤 방콕을 방문할 경우 꼭 들러봐야할 곳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상한 데 기웃거릴 생각일랑 말고 오리엔탈호텔에 꼭 투숙해라. 이곳은 세계의 대문호 서머싯 몸이 작품을 집필했고 조지프 콘래드가 묵고 간 유서깊은 호텔이란다. 외국을 있는 그대로 잘 이해하지 못하면 사고가 협소해져 정신적인 성장만 저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모는 태국에서 자주 보고 있다. 돈벌러 태국으로 몰려왔다 낭패를 본 한국인 사업가들을 옆에서 많이 봐 왔다. 2년전 한국의 어느 보건대에서 전산일을 하던 사람이 사업을 하러 왔단다. 그런데 이 사람은 태국인들이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사업의 기본이 되는 영어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지. 병원용 전산프로그램을 팔려고 했는데 현지 시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덤벼들다 자본금을 다 날리고 한국으로 줄행랑을 치다시피 돌아갔었다. 이런 사람들이 한달에도 수십명이 넘는단다. 또 동포를 등치고 사는 악덕 사기꾼들도 날뛰고 있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다. 이모가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준환이가 어른이 됐을 때 다른 나라, 아니 다른 사람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야. 부디 코스모폴리턴적인 멋진 대한의 남아로 성장해주길 이모는 먼 이역에서 바라고 있겠다. 김 미 리 <태국 방콕 거주 교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