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자동차업계의 새로운 노사관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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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으로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지난 3년간 2%대의 저성장을 기록할 때만 하더라도 수출 부진과 가계부채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경기 하강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등으로 올해 또다시 2%대로 추락하자 이대로 저성장이 고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하여 정부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12조원대의 추가경정 예산을 긴급 편성했고, 노동 공공 교육 금융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장기 고성장에서 장기 저성장으로 변화하게 되면 고성장에 맞추어져 있던 그간의 경제 시스템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 기업의 온정적 노사관계다.

고성장기에는 노조의 지나친 요구나 행동도 묵과되기 일쑤였다. 경제 전체의 파이가 커지는 시기였기에 사측은 이러한 요구를 수용해 주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 사회도 경제성장의 혜택을 함께 누렸기에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장기 저성장기가 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경제가 정체되고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사측도 더 이상 노조의 지나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꾸로 사측이 임금 삭감이나 배치전환, 구조조정과 같은 요구를 노조 측에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시장의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거나 줄어들게 됨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고성장기에 너그럽게 봐줬던 노조의 일탈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 사회 내에서도 노조의 몫이 커지면 손해를 보는 계층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최근에 대두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이 좋은 예다. 정규직이 과보호 속에 많은 혜택을 누리면 누릴수록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그들의 처우가 더욱 악화된다.

기존 취업자와 청년실업자의 대립도 같은 예다. 특히 여야 국회의원들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내년부터 정년 연장법을 실시하기로 하면서 이런 대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대기업 노조원들은 고임금을 5년간 더 향유할 수 있게 됐지만, 이 때문에 청년들은 고용절벽 앞에 좌절해야 하는 것이다. 돈도 직장도 없는 ‘제로 세대’,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인간관계, 희망을 포기한 ‘7포 세대’가 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장기 저성장이 본격화되는 이 시점에 한국 기업의 온정적 노사관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새로운 경제 상황에 맞추어 노사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바로 그 정점에 자동차업계 노사관계가 있다.

자동차업계의 노사관계는 온정적 노사관계의 대명사였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세계 5위의 자동차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행동을 계속해서 들어줬다. 그 결과 노조가 받는 대우는 한국 산업 중 최고이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업계가 됐다.

하지만 고용절벽과 취업대란 속에서 자동차노조는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취업실패자들이 자동차노조를 원망하고 저주하고 있다. 이러한 원성에 자동차노조는 응답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한국의 노사관계도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그 정점에 자동차 노사가 있다. 서로가 대타협을 하면서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한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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