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경제]자격증… 승진공부… 은행원 생존 ‘정글의 법칙’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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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경제부
박민우·경제부
한 시중은행 압구정지점에서 근무하는 대학 후배는 요즘 입이 잔뜩 나왔습니다. 지점의 막내 행원인 그는 상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여름휴가를 가지 못했습니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공부’라고 합니다. 은행 안에서 치르는 시험, 업무 관련 자격증 시험까지 몇 주에 걸쳐 몰려 있어 주말에도 쉴 틈이 없습니다. 당장 13일에는 개인재무설계사(AFPK) 시험을 앞두고 있고, 11월에는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시험까지 볼 예정입니다.

그가 주말도 반납하며 ‘열공’ 중인 이유는 평가 때문입니다. 지점 행원들이 내부 연수 프로그램에 얼마나 참여했는지,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을 얼마나 취득했는지가 지점장 평가에 반영됩니다. “자격증 공부 열심히 하냐”란 지점장의 한마디가 몹시 부담스러운 겁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주경야독하는 은행원도 많습니다. 국민은행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만 행원 1만6960명이 평균 2.04개의 내부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진행되는 관련 내부 연수에는 수천 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일부 은행은 주요 자격증을 딴 직원에게 평가 때 개당 0.1∼0.3점의 가산점을 줍니다.

농협은행에는 ‘승진고시’로 불리는 시험이 따로 있습니다. 매년 치러지는 이 시험은 어렵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매일 새벽잠을 설쳐가며 최소한 6개월 이상 공부해야 하고 합격률도 극히 낮다고 합니다. 통과할 자신이 없으면 이보다 쉬운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우수한 고과를 받아야 승진할 수 있습니다.

은행원들이 공부에 매달리는 건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저금리로 수익성이 악화되자 은행들은 지점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줄여 나가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8년 말 4780개였던 시중은행 점포 수는 지난해 말 현재 4422개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만큼 지점장이 될 확률도 줄었습니다. 취업준비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은행도 이제 공부하지 않으면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경쟁의 장이 됐습니다.

박민우·경제부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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