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기업도시를 가다]<6> 日도요타市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1월 10일 03시 03분



“市이름도 도요타” 70년간 전폭 지원… 日 최고 부자도시로

《일본 혼슈(本州) 섬 남부의 아이치(愛知) 현.

현의 중심인 나고야(名古屋)에서 차를 타고 1시간가량 동남쪽

방향 교외로 달리면 세계적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본사와 12개 공장, 400여 개의 협력업체가 모여 있는 도요타(豊田) 시가 나온다.

서울 면적의 1.5배 정도에 42만여 명이 살고 있는 이곳은 ‘도요타를 위한, 도요타에 의한, 도요타의 도시’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도요타자동차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고, 공업부문에서 일하는 10명 가운데 8명이 자동차 산업 종사자일 정도다.

시의 재정력은 몇 년째 전국 평균의 2, 3배 수준. 일본 최고의 부자 도시이기도 하다.》

1935년 뽕밭에 공장 유치

면세-용지조성 등 파격 혜택

市재정력-고용률 전국 최고

“도요타 달력 따라 市돌아가”


도요타 시청 앞. 어른 키만 한 높은 단상 위에 우뚝 선 두 남자의 청동상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 청동상의 주인공은 도요타자동차의 창업주인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와 도요타자동차 설립 당시 고로모(擧母·현 도요타 시) 정의 정장(町長)이었던 나카무라 주이치(中村壽一).

도요타 시청 측은 “매년 3월이면 이곳에서 도요타자동차 임원과 도요타 시 관계자,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헌화식이 열린다”며 “지금의 도요타를 만든 두 지도자를 기리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뽕나무밭에 도요타를…

고로모 정은 본래 누에를 길러 비단을 만들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1930년대 들어 방적산업이 쇠퇴하자 나카무라 정장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마을이 무너질 것”이라며 부흥 방안을 찾았다.

그러던 중 그는 1934년 인근 가리야(刈谷) 지역의 방적회사 ‘도요타 자동직기’가 자동차 사업을 위한 공장 용지를 찾는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나카무라 정장은 그 길로 도요타를 찾아가 유치 의사를 적극 타진하는 한편 도요타가 원하는 대규모 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공장유치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실 당시 도요타 자동직기는 현재의 도요타를 유력한 공장 용지로 여기지 않았다.

“당시 신문기사 등을 보면 고로모 외에 가리야, 나고야 등 4, 5곳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습니다. 그중 고로모는 땅 주인들과 협상이 잘 안 돼 용지 조성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이었죠.”(곤도 다카히로 도요타 시청 산업노정과 산업진흥담당 계장)

그러나 나카무라 정장은 포기하지 않고 지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교섭을 벌였고, 1년 뒤 182명의 땅 주인을 설득해 58만 평에 이르는 땅을 확보했다.

마침내 도요타 자동직기는 1935년 고로모 정에 새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다.

○ 시 이름까지 바꿔 운명을 함께…

도요타자동차를 유치한 고로모 정은 1952년 시로 승격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더 많은 공장을 유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1954년 ‘공장유치 장려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고정자산세와 시민세 등을 공장 개시일로부터 3년간 면제해 줄 뿐 아니라 고로모 시가 공장입지 정비를 적극 돕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것이었다.

공장유치 장려 조례는 1999년 ‘산업입지 장려 조례’로 업그레이드됐다. 5년간 제조기업에 대한 각종 면세혜택을 주고 공장 용지 조성, 토지 분양대금 장기 분납 및 신기술 개발 보조금 지원 등까지 해준다는 내용이다.

1954년 조례에 힘입어 고로모 시에는 더 많은 공장이 생겨났고, 도요타자동차를 중심으로 거대한 자동차 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에 고로모 상공회의소는 1958년 “시의 이름을 도요타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당시 시 사료(史料)에 따르면 일부 주민은 “고로모의 역사와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찬성하는 측은 “고로모의 미래는 도요타자동차에 달렸다. 이름을 바꾸고 운명을 같이하면 도요타자동차가 (더 성장한 뒤) 본사를 이전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고로모 시 의회는 여론조사와 공청회를 진행했고, 압도적 찬성을 얻어 그해 시의 이름을 도요타로 바꿨다.

이후 만 50년이 된 지금, 도요타 시는 도요타자동차만큼이나 유명한 세계적인 도시가 됐다. 그동안 시의 면적은 5배로, 인구는 38배로 늘었다. 몇 년째 시의 재정력은 전국 최고, 실업률은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도요타 시는 도요타 브랜드를 활용해 ‘도요타 차(車)’뿐 아니라 ‘도요타 차(茶)’도 만들어내는 등 다양한 부가가치 사업도 발굴 중이다.

○ 합심(合心)해 만드는 도시의 미래

도요타 시에서는 모든 것이 도요타자동차에 맞춰 돌아간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이곳에선 일반명사처럼 통한다는 ‘도요타 카렌다(캘린더·달력)’이다.

“도요타자동차의 휴가 일정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한 해 계획도 달라진다는 뜻이지요. 4∼5월의 ‘골든위크’나 ‘오본(お盆·우리의 추석 격인 연휴)’ 기간의 큰 축제는 물론 지역의 불꽃축제나 신사(神社) 제사, 상점 운영일 등도 그에 맞춰 결정됩니다.”(도요타 시 주민)

이러한 지역사회의 헌신에 도요타자동차도 각종 사회공헌 활동으로 보답하고 있다.

당초 직원용으로만 운영하던 회사 소유 병원을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가 하면 도요타공업대를 설립해 지역 기술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도요타 중앙연구소는 이 지역 협력업체의 R&D 활동도 돕는다.

마쓰자와 아키오 도요타 시청 산업노정과 부주관은 “최근 시와 도요타자동차는 친환경적 지역환경 조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기업도시로서의 도요타의 미래는 공업과 자연,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도요타市 공장서 세운 ‘日 자동차史 기념비’

1955년 日 최초 대중 승용차 개발

‘가이젠’ 등 도요타 생산방식 창안


도요타자동차는 ‘생일’이 두 번이다. 공식 설립일은 1937년 8월 28일. 그러나 창립 기념일은 11월 3일이다. 고로모 정(현 도요타 시)에 첫 공장을 완공한 날(1938년 11월 3일)을 ‘창립’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도요타 시의 공장들이 도요타자동차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도요타자동차의 역사적 성과들은 모두 이곳 고로모 정과 도요타 시에서 이뤄졌다.

도요타자동차가 고로모 공장에서 개발해 1955년 처음으로 선보인 ‘크라운’은 당시 일본 최초의 대중 승용차로 큰 호응을 얻었다. 도요타자동차는 이 모델을 통해 미국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고, 크라운은 올해 초 13번째 버전이 출시됐을 정도로 50년 이상 장수(長壽) 모델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1966년 도요타 시의 공장을 증설해 생산한 ‘카롤라’ 역시 일본 전역에 자동차 대중화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 신화적 모델이다.

도요타자동차 하면 떠오르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적기 부품공급 체계)’ ‘간반(看板·각 부품용기에 붙이는 정보 표시판)’ ‘가이젠(改善·혁신 아이디어를 모아 공정에 반영하는 것)’과 같은 고유의 생산방식도 모두 이 지역 공장에서 창안돼 현실화됐다.

기업의 역량과 근로자의 노력, 지역 사회 지원의 결정체인 도요타 공장을 기반으로 2001년 도요타자동차는 오랜 염원이었던 ‘글로벌 10’(세계 자동차시장의 10% 점유)을 달성했다.

도요타자동차 관계자는 “지금도 도요타 경쟁력의 비결을 배우기 위해 이 지역을 찾는 발길이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특별취재팀▼

▽팀장=정경준 산업부 차장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스웨덴=황진영 조용우 기자

▽네덜란드 벨기에 폴란드 헝가리 일본=김창덕 임우선 기자

▽미국 캐나다=김유영 기자

▽중국 인도=박형준 기자

(이상 산업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