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의회에 제출한 반기 환율 보고서에서 “위안화 환율은 시장 유연성이 부족하며 중국의 외환보유액 확대는 글로벌 불균형 해소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중국은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해 무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누리면서 외환보유액을 확대하고 있고 이는 미국 무역적자를 가속화한다”라는 뜻이다. 올해 초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위안화를 절상하라며 중국을 정조준하다가 후퇴한 뒤 가장 강력하고 공식적인 펀치를 날린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미 재무부의 이런 자세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달러화의 주도적인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는 공식 입장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달러 가치를 사수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과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면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를 낮추려는 위안화 절상 압력은 ‘표리부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두 상충된 발언에는 복잡한 국제경제 질서의 역학관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우선 미국으로서는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잃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시나리오다. 과거 무역역조 해결을 위해 일본과 독일의 화폐 가치 상승을 유도해 낸 ‘플라자 합의’의 경험을 살려 중국을 상대로 제2의 플라자 합의에 준하는 합의를 이끌어내고 싶은 속내를 비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생각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연초 경험한 대로 중국은 미국이 위안화 절상 압력을 계속하면 미국의 재정을 흔들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던졌다. 중국이 보유한 막대한 양의 달러와 국채를 팔기 시작하면 미국의 금리는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고 이로 인해 미 정부의 재정은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 및 남미 신흥국까지 전방위적인 환율공세를 펼치고 있는 원인이다. ‘성동격서’ 즉 일종의 물타기 전략이다.
문제는 사실상 고정환율제인 중국은 달러 약세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엉뚱하게 유로를 비롯한 전 세계 화폐가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며 급격히 절상되는 데 있다. 이에 대해 남미권은 가상통화인 ‘수크레’와 ‘외환 거래세’ 도입 등을 통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으며 유로존은 유로의 기축통화를 향한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외환시장에 공식, 비공식으로 개입하는 등 대대적인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다. 초점은 중국의 대응이지만 중국은 미동도 않고 있다. 스스로의 위상에 자신감이 넘친다.
한국은 어떨까. 개방체제인 한국 경제는 의도하지 않은 화폐전쟁에 말려들기 쉽다.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한국 경제에서 환율의 급변은 아무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이나 유럽처럼 미국에 강하게 맞설 능력이 없다. 지혜로운 판단과 거시적 안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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