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증시산책]'천수답' 중국 증시

  • 입력 2002년 12월 8일 18시 56분


중세 유럽에서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피를 뽑아내는 사혈(瀉血)이 성행했다.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것이 피에 숨어 있으며 나쁜 피를 빼내면 병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병이 생기고 전염되는 것은 병원균 때문이라는 사실을 루이 파스퇴르가 발견한 19세기 말까지도 사혈은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1950년대까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에 들어온 잡신(雜神)을 내쫓는 굿을 벌였다.

사혈과 굿은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해 내려진 잘못된 처방이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증시에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난다. 컴퓨터와 첨단 분석기법으로 무장한 투자전략가(Strategist)와 기업분석가(Analyst)들이 매일 수많은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지만, 지수와 주가의 움직임을 제대로 제시하는 경우가 드물다.

종합주가지수가 940선까지 올랐던 올 4월 대부분의 전문가는 1,000을 넘어 ‘주가 네 자릿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주가는 580선까지 하락했다. 이어 730선까지 오를 때 상승을 점친 사람도 찾기 힘들다.

이는 한국 증시가 미국 증시와 외국인 매매동향에 좌우되는 ‘천수답’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탓이다. 지수를 580까지 끌어내린 것은 2월부터 9월까지 5조4000억원어치나 순매도한 외국인 때문이었다. 최근에 730까지 끌어올린 것도 외국인이 2조원 넘게 순매수한 덕분이었다.

가파르게 오르던 지수가 750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미국의 11월 실업률이 6.0%로 높아졌으며, UAL이 파산하고 AOL, 휴렛팩커드 등의 실적 악화가 예상되고 있다. 미-이라크 전쟁 우려가 살아 있고, DDR D램 가격이 떨어지고 있으며, 12일은 주가지수선물과 옵션 및 개별주식옵션의 만기가 함께 돌아오는 ‘트리플위칭데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5일 금리를 0.5%포인트 내렸고, 미국의 폴 오닐 재무장관과 로런스 린지 백악관 경제수석이 물러나 새 경제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등 긍정적 요인은 작아 보인다.

악재와 호재가 겹치는 불확실성 속에서 외국인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외국인이 사는데 팔거나, 외국인이 파는데 사는 것은 사혈이나 굿처럼 잘못된 처방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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