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험 방사능 탐지 못할 수도… 北허풍 아니다”

  • 입력 2006년 10월 1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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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은 사기가 아닙니다. 방사능이 탐지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 핵실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드보르킨(70·예비역 중장) 러시아정책연구소 고문은 1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러시아 국방부 중앙연구소장을 지내면서 핵실험을 관장했고 핵무기 감축협상 실무자로 활동한 그는 “북한에서 발생한 지진파의 성격으로 볼 때 북한 핵실험의 진위 논쟁은 무익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한국에서는 9일 북한 핵실험 발표 이후 핵실험의 진위와 관련한 각종 의혹과 소문이 돌고 있다. 핵 전문가의 시각으로 볼 때 북한 핵실험은 실제로 진행된 것인가.

“러시아 국방부는 9일 오전 북한에서 발생한 지진파를 근거로 지진파 규모와 폭발 규모를 측정했다. 핵실험에 의한 지진파는 일반적인 지진이나 폭발에서 나오는 파장과는 처음부터 다르다.”

―한국 일본 미국 러시아가 측정한 폭발 규모는 왜 서로 다른가.

“폭발 규모는 계측 방법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한국과 서방 국가들은 TNT 500t 급 내외로 계산했지만 러시아 국방부는 최소 5000t, 최대 1만5000t으로 발표했다. 1만5000t은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보다 위력이 조금 약한 정도다. 러시아 군에는 폭발력을 계측하는 특별한 장비와 방법이 있는데 서방국가와 다른 계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러시아 민간연구소들도 지진파 규모를 측정했는가.

“러시아 기상과학 아카데미도 북한에서 발생한 지진파 규모를 4.0으로 기록했다. 미국이 측정한 규모와 유사하다.”

―계산 방법의 차이만으로 평가 결과의 격차를 설명할 수 있는가.

“실험장 주변의 지형도 폭발 규모 측정에 영향을 미친다. 폭발지점 남쪽으로 바위와 광물이 다량 분포하면 남한에서 측정한 수치가 상당히 왜곡될 수 있다. 데이터가 축적되고 분석이 완료될 때까지 폭발 규모는 계속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핵폭발이 성공했다고 보는가.

“성공인지 아닌지는 지금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핵실험이 ‘진짜인지 사기인지’를 놓고 벌이는 논쟁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핵폭발 성공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국’이라고 말한 것은 성급한 판단 아닌가.

“러 국방부가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했을 것이다. 조만간 북한 핵폭발을 입증할 보완 자료를 내놓을 것으로 본다.”

―진짜 핵실험이었다면 방사능은 왜 나오지 않는가.

“핵실험 후 방사능 검출은 3주일 정도 기다려 봐야 한다. 러시아 극동 군관구와 연해주 비상대책부는 1시간마다 공기를 검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정상 수치라고 한다. 풍향을 고려할 때 일본이 먼저 핵실험에 나온 방사능 물질을 탐지할 가능성이 크다.”

―방사능이 아예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나.

“그렇다. 지금까지 미국 프랑스 등이 실시한 지하 핵실험에서 방사능을 발견하지 못한 사례가 수십 건 있다. 실험장이 완벽한 수준으로 밀폐되면 방사능을 탐지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핵폭발 뒤의 지형 변화나 분화구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폭발 후 분화구(crater)나 지질 변화는 인공위성이 사진을 찍지 못했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 같다. 인공위성이 핵실험을 실시한 정확한 지점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소규모 폭발이었을 때나 지형이 단단할 경우에도 지형 변화가 작을 수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는 핵실험 이후 인공위성으로 분석한 자료가 나왔다는 얘기가 들린다.

“극동지역 환경감시기관이 11일 온도 변화 데이터를 내놓았다. 하바롭스크 시간으로 오후 3시(한국 시간 오후 1시)에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 국경에서 서남쪽으로 130km 떨어진 북한 지역의 지표면 온도가 급상승했다. 핵실험에 따른 결과인지는 더 분석해 봐야 할 것이다. 2시간 반쯤 지나 지표면 온도가 갑자기 올라갔다면 핵실험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서 사용한 핵 물질은 무엇인가.

“러시아의 많은 전문가는 이번에 사용된 실험 재료가 플루토늄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북한은 15년 전부터 핵물질 재처리와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기술을 익혀 왔기 때문에 추정이 맞을 것이다. 우라늄 실험은 대규모 폭발을 동반한다. 북한이 우라늄 폭탄을 개발했다는 정보는 러시아에 없다.”

―플루토늄은 보통 소규모 폭발 시험에 사용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북한이 플루토늄으로 소규모 폭발 시험에 성공했다면 핵 기술이 충분히 향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정보가 부족해 단정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핵 기술은 어떤 수준이라고 평가하나.

“북한이 폐쇄된 국가라서 핵 기술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파키스탄에서 수준 높은 기술을 도입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미사일 탄두에 핵물질을 적재할 기술을 개발했는지도 알 수 없다.”

―북한이 발표한 대로 핵실험을 할 때 안전장치는 충분히 확보했다고 보는가.

“그것 역시 판단하기 어렵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블라디미르 드보르킨

193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해 1958년 러시아 해군대학을 졸업하고 해군 실험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62년부터 잠수함 및 수중 핵실험에 참여해 핵전문가 경력을 쌓았다. 1963년부터 2001년까지 국방부 중앙연구원에 근무하면서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등 각종 군축 협상에서 러시아 측 실무자로 활동했다. 1974년 러시아 군사과학아카데미에서 ‘국가 무기 프로그램의 수학적 모델 구축’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해군 중장으로 승진해 국방부 중앙연구원장으로 재직했다. 2004년 전역한 뒤 대통령 자문위원, 민간연구소인 러시아정책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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