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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언론법안’]언론중재委가 민사상 손해배상액 1차 결정

입력 2004-11-05 18:26업데이트 2009-10-0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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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은 국회에 제출한 언론관련법안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됐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Punitive damage)’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악의적인 손해를 끼친 경우에 손해액보다 많은 고액의 배상금을 물리는 것으로 ‘괘씸죄’에 대한 가중처벌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배심제를 실시하는 영미법계 국가의 담배소송 환경소송 의료소송 등에서 판례로서 발전된 제도다.

구체적으로 입증된 손해액만을 배상토록 하고 있는 한국에는 어느 분야에도 이런 제도가 없다. 그런데도 일부 시민단체는 언론분야에 이 제도를 도입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고, 여당도 한때 언론관련법안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여당은 명문화를 유보했지만, 법안을 꼼꼼히 읽어본 전문가들 중엔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이 많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살아있다”

여당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언론피해구제법안)은 우선 언론중재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중재위가 언론분쟁과 관련한 민사상 손해배상 중재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중재위가 사실상 1심법원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쌍방 당사자의 어느 쪽이든 결정에 불복해 법원에 정식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있다.

중재위가 징벌적 의미를 담아 언론사에 거액의 배상금을 물릴 경우 정식재판에 가더라도 중재위의 결정이 법원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는 전체 중재위원의 40% 이상이 판사나 변호사 등 법조인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를 20% 이상 위촉하도록 한 것도 중재위의 분위기를 크게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중재위원 위촉권자가 문화관광부 장관이어서 과연 중재위의 중립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재판부 재량에 맡겨진 손해액 산정

게다가 이 법안엔 ‘법원은 손해액을 산정하기 힘든 경우 변론 취지, 증거조사 결과를 참작해 그에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동안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손해액 산출근거를 통상 원고측이 제시하도록 했으나, 이 법안대로라면 원고측이 명확한 근거를 내놓지 못해도 재판부가 재량에 따라 손해액을 산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재위의 결정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완(文在完·헌법학) 단국대 교수는 “운영상의 문제라 아직은 단정하기 어렵지만 특정 언론사를 공개적으로 반대해 온 일부 시민단체 인사들이 중재위에 대거 참여하게 될 경우 논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비판은 엄두를 내지 못할 상황

이 법안은 또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우려가 있기만 해도 침해의 예방을 청구할 수 있고 사후적인 손해배상을 위해 미리 담보를 청구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 강경근(姜京根·헌법학) 숭실대 교수는 “이 조항이 남용될 경우 정부나 권력자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나 의혹 제기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상황이 예상된다”며 “여러 관련조항을 연계해 해석할 경우 언론피해구제법안에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언론사를 상대로 한 정부기관이나 고위공직자들의 제소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해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의 언론중재 신청은 224건으로 전체 신청건수의 30.9%를 차지했다. 중재위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액수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이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과 4개 언론사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의 청구액수는 총 30억원이었다.

●공직자에게 입증책임 지운 미 판례

이와 관련해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뉴욕 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경찰국장이었던 설리번은 뉴욕 타임스에 실린 의견광고가 자신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주 법원은 뉴욕 타임스에 5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미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미 연방대법원은 판결 이유로 ‘현실적 악의론’을 내세웠다. 공직자가 공무와 관련된 일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언론사가 그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보도했음을 공직자 자신이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판결이 없었다면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와 같은 언론의 추적보도는 불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언론피해구제는 현행법으로 충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인정되는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형법에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으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은 더 엄격히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다 손해배상은 물론 위자료와 정정보도 등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굳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지 않아도 충분한 피해구제 장치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성선제(成善濟) 미국 변호사는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는 한국의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구제가 가능하다”며 “여당의 언론피해구제법안은 국민의 감시를 받아야 할 사회적 강자를 위한 것으로 언론의 취재보도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고 말했다.

언론피해구제법안 손해배상 관련 조항
조항주요 내용전문가 지적
손해배상중재신청(17조)―중재 불성립시 1개월 내에 손해배상액 명시해 신청
―손해배상중재신청은 반론 및 정정보도 청구와 경합해 신청 가능
―중재위, 중재안 작성해 수락 권고
―중재위, 화해 권고 결정 가능
―중재위의 중재 및 화해 권고 결정은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
―사법부 영역 침해 논란 소지
손해의 배상(24조)―법원은 손해액 산정 곤란시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손해액을 산정하도록 함
―인격권 침해 우려만 있어도 침해 예방이나 손해배상 담보 청구 가능
―담보 청구시 해당 신문 등 폐기 청구 가능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 논란 소지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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