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Beauty]찌푸린 얼굴이 펴져가는 감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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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통증과 얼굴

환자의 얼굴을 잘 살펴보면 환자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다.
환자의 얼굴을 잘 살펴보면 환자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얼굴은 ‘얼꼴’에서 나온 순수 우리말이다. 얼은 ‘마음과 정신 그리고 혼’을 가리키고, 꼴은 그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얼의 꼴 즉, 마음의 형태가 나타난 것이 얼굴이다. 꼴값, 꼴불견은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닐 때를 비하하는 말이다.

나도 환자가 오면 얼굴을 살펴본다. 통증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잘 극복하고 있는지, 힘들지만 잘 견디고 참을 것인지. 통증이 너무 오래되고 고통스러워 우울증이 오고 폭력적으로 변해 가는지.

꼭 술을 먹어야 잠들고, 평소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을 툭툭 던지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억지로 겨우 따라온 할머니의 원망 섞인 푸념을 이해할 만했다. 만성통증이란 놈이 그렇다. 금방 죽을병도 아니고,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어서 겉에 나타나지도 않고, 병원에 가도 속 시원한 대답도 듣지 못하고. 원인은 확실히 모르겠는데 본인은 밤마다 아파 죽겠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심코 꾀병이라고 할 만도 하다. 이런 상태가 오래가면 사람도 싫고, 세상만사 짜증만 나고, 왜 나만 이럴까 하고 원망만 쌓여 종래에는 우울증이 찾아온다. 이렇게 되면 가까이에서 시달리는 할머니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온다.

자식들은 모른다. 다정했던 어머니 아버지가 왜 툭하면 싸우고 서로 욕하는지. 우리는 원인을 모르면 그냥 쉽게 만성통증이라고 부른다. 만성이라는 말은 현대의학으로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원인을 잘 모르면 증후군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만성’이라는 말에 만성이 되어서 가족이 환자의 상태를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통증은 아무리 만성이 되어도 그 아픔의 강도는 만성이 되질 않고 처음이나 나중이나 똑같다. 감각 중에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젊은 때와 똑같은 감각이 통증감각이다. 통증은 우리 생명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통증감각이 무디어져서, 불에 데어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손을 늦게 뺀다면 우리 몸은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서 주사를 맞을 때 아픔을 느끼는 감각은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

웃음기가 사라져 잔뜩 찌푸린 ‘얼꼴’을 한 절망 속의 할아버지 환자가 신랑 때의 인자하고 자상한 ‘얼꼴’을 찾아가는 것은 감동이다. 의사가 되기를 참 잘했다고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나만의 시간이다. 할아버지의 ‘얼꼴’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할머니의 ‘얼꼴’에서 신부 때의 수줍은 모습이 언뜻언뜻 보인다. 내가 관상을 보지는 못하지만 환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강 안강병원장
안강 안강병원장
#얼굴#만성통증#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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