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여행 칼럼) 이스라엘 예루살렘 “천국보다 낯선”

  • 입력 2015년 8월 7일 1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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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대단한 탐험가도 아니고 굳이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로의 여행을 즐길 리 없다. 다만 난 남들보다 조금 유별난 호기심을 가졌고 그 호기심이 커지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만큼 깊게 빠져들곤 한다. 그 호기심이 여행이 될 때 남들에겐 탐험가처럼 보이는 것 같다.

칼럼니스트·포토그래퍼 감성사진사 이두용


어쩌다가 가게 된 이스라엘

해외여행이 흔해진 요즘이지만 방문하는 나라들을 보면 약속이나 한 듯 교집합이 많다. 더욱이 TV에서 연예인이 어딘가를 다녀왔다고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라, 그 도시는 국내 여행객이 가장 좋아하는 명품 도시로 탈바꿈하곤 한다.

그래서 <꽃보다 할배>나 <꽃보다 누나> 같은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면서 마치 해외여행의 길잡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요즘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생소한 나라다. 해외에 발 도장 꽤 찍어봤다는 사람을 만나도 이스라엘 얘기를 꺼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오히려 “거길 왜 갔어? 성지순례 간 거야?”라고 물어왔다. 사실 신앙심 깊은 어르신들에게 이스라엘은 죽기 전에 한 번쯤 찾아가서 눈으로 보고, 발로 걸으며 예수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 유명하고 화려한 지역도 많은 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굳이 같은 돈을 들여 이스라엘을 여행지로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난 어쩌다 보니 이스라엘에 가게 됐다. 요르단에서 사진전시회 겸 축제를 열었던 그해, 요르단 비자를 연장할 요량으로 이스라엘행을 택했다.

요르단은 한국인에게 3개월간 체류 비자를 준다. 만약 더 머물기를 원한다면 지정 경찰서에 가서 지문을 찍고, 혈액 검사 등을 받은 다음 연장 신청을 해야 한다. 그마저 계속 반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국경지대 풍경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국경지대 풍경

가장 편한 건 요르단 인근의 다른 나라를 방문했다가 오는 방법이다.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하면 새롭게 3개월간 머물 수 있는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 여행을 계획한 게 아니기 때문에 가장 저렴하고, 많이 불편한 교통편을 찾았다. 느릿한 버스를 타고 요르단 시골 마을을 빙빙 돌아 국경지역까지 간 다음 거기서 다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낯선 풍경과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운 나로서 불편한 게 가장 즐거운 일이 돼주었다.


비아 돌로로사에서 잠들다

더웠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어깨를 맞댄 국경지역. 버스를 잘못 내려 한 시간 가까이 풀 한 포기 없는 마른 땅을 걷고 있었다. 요르단의 여름. 덥고 어쩌고를 말할 기운도 없을 만큼 뜨거웠다. 맘 같아선 그 길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몇 번의 해프닝을 겪고 그날 저녁, 이스라엘 예루살렘 땅을 밟았다. 요르단에 처음 갔을 때만큼 낯선 느낌. 입국 비자에 찍힌 히브리어를 시작으로 모든 게 새로웠다. 설렜다. 숙소를 찾아 침대에 머리를 누이고도 새벽까지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 일찍 찾아간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오래전 TV 드라마 <종합병원>의 OST로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슬픔의 길’ 혹은 ‘고난의 길’로 부르기도 하는 이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걸었던 길이다.

총 14개 지점으로 나뉘어 있는데 2,000여 년 전 예수가 재판을 받았던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올랐던 골고다 언덕, 십자가 처형을 받았던 지점까지 연결돼 있다. 매일 전 세계에서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걸으며 예수의 고통과 희생을 기린다.

내가 비아 돌로로사를 찾은 날은 유난히 순례자가 적었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


여느 나라의 가난한 시골 마을 관광지처럼 거리 양쪽엔 상점이 즐비했고, 상인들은 예수와 성경 이야기로 제품을 만들어 장사했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오히려 정감이 들어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전날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던 것이 피로가 되어 내 발목을 잡았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을 걸으며 졸음이라니.

예수는 십자가의 처형을 받기 전 새벽을 밝히며 울며 기도했는데, 난 계단에 발을 내디디며 연신 눈을 끔뻑거렸다. 볼을 꼬집고 물을 마셔봤지만 소용없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다가 포기, 결국 계단 옆으로 난 길 바로 안쪽 통로에 있던 벤치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이내 잠들어버렸다.

이른 아침 예루살렘 성 앞의 풍경
이른 아침 예루살렘 성 앞의 풍경


통을 지키며 사는 그대들

깨우지 않아도 눈은 뜨였다. 몸이 화덕에 들어간 것처럼 후끈했다. 누워 있던 곳에 햇볕이 든 것이다. 중동의 여름 햇살을 받으며 잘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간도 한참 지나 있었다.

부리나케 걷고 뛰며 비아 돌로로사 꼭대기,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받은 곳까지 돌아봤다. 사실 그날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비아 돌로로사를 몇 번 더 찾아갔다. 14개 지점을 사진에 담고 예루살렘 성이 한눈에 보이는 건너편 올리브산에 올라 도시 전체를 찍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호기심을 자극 한 건 예루살렘 성 안이 아닌 바깥쪽이었다.

성을 중심으로 그 외각 올드시티에 모여 살며 전통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독특한 복장과 문화가 궁금했다.


전통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해도 두꺼운 검은 외투에 커다란 검은 중절모(스타라이멜)를 쓰고 다녔다. 복장만큼 머리 스타일이나 수염도 모두 비슷했다.

남자들은 성경 구약에 나오는 내용에 따라 머리를 땋아 기르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렸다. 여자들 역시 더운 여름날에도 긴 소매 옷과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유대인 여자들은 결혼하면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두거나 혹은 관심을 끌지 않도록 머리카락을 가리거나 자른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예루살렘이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뿐 아니라 이슬람교의 성지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성경의 구약을 경전으로 삼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하나님이 중심으로 삼은 곳이 예루살렘이니 이곳은 당연히 성지다.

또한, 신약에서 예수가 활동하고 십자가에 달려 처형받은 곳 역시 이곳이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을 모두 믿는 그리스도교에도 이곳은 성지임이 분명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때문에 유대인과 모슬렘을 구별해서 생각하지만, 이스라엘은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함께 쓰고 있고 예루살렘엔 다수의 아랍인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에 서로의 종교 행사가 있는 날엔 조금 예민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교의 성지 비아 돌로로사와 유대교의 예루살렘 외벽인 통곡의 벽, 그와 담을 맞댄 이슬람교의 바위돔(황금돔) 사원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건 과거의 다름이 이어오며 현재의 같음으로 묶어준 무언가가 있지 않아서일까. 잠시 머물다 온 내게 이스라엘은 큰 여운과 호기심을 남긴 나라였다.


월간 아웃도어 편집장, 뮤지션으로 10년 넘게 살면서 책·음반·여행사진을 찍으며 사진에 입문했다. 2009년 중동 요르단 5개 지역에서 사진전과 함께하는 거리 축제를 열었다. 영국 공군이 주최하는 사진전과 심장병 어린이 기금마련 국제행사에 초청 전시했다. EBS <세계테마기행> ‘요르단 편’ 진행자를 시작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저서로는 <오늘부터 행복하다>(부즈펌)이 있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amed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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