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시네마테라피) 국제시장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 입력 2015년 2월 10일 15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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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이 우파 영화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국제시장>이 우파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논쟁이 된 장면의 경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좌파에 살짝 발을 걸친 것 같이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COLUMNIST 최명기


시대상을 반영하는 풍자의 표

가장 논쟁이 된 장면은 덕수와 영자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덕수가 국기에 경례를 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과연 순수한 애국심이 반영된 장면이었을까?

그런데 영화에서 덕수의 표정을 보면서 애국심의 발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리어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덕수의 입장에서는 부부싸움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였는데, 마침 애국가가 울려 퍼져 발을 뺄 기회가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한 여자가 구슬프게 울고 있음에도 애국가에 맞춰 일어나지 않는다고 째려보는 노인의 시선 역시 어떤 점에서는 풍자다. 애국가만 울리면 하던 동작을 기계적으로 멈추고 일어서야 했던 권위적 시절에 대한 비판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덕수와 달구가 독일에 가기 위해서 채용심사를 받는 장면에서 애국가는 또다시 등장한다. 담당자가 채용되기에 부족한 점을 지적하려고 하자 덕수가 뜬금없이 애국가를 부른다. 달수도 따라 부르고 모든 지원자가 따라 부르고 나중에는 면접 담당자도 따라 부른다. 그리고 애국심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합격 도장을 받는다.

애국심이면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 되던 시절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장면 역시 개인은 없고 국가만 있던 시절을 풍자한다.

본 영화의 우파 논쟁과 관련해 필자가 눈여겨봤던 장면은 고등학생이 외국인 노동자를 무시하자 덕수가 대신 나서 싸우는 장면이다. 어느 나라나 우익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징은 외국인을 배척하는 태도다.

청년이건 노인이건 우익은 뭔가 일이 잘못되면 이민자 혹은 외국인에게 분노와 불안을 투사하고는 한다. 그런 점에서 위의 세 장면을 놓고 볼 때 국제시장을 과거를 미화한 우파 영화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국가에 대한 실망을 통한 국민적 공감

<국제시장>에는 과거를 미화한 것으로 볼만한 좋은 장면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6·25전쟁, 파독광부, 베트남전쟁 등 힘들었던 과거가 주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1970년대 경제도약을 상징하는 대규모 산업단지도 등장하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 모습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산가족 찾기가 이루어진 1983년도에 스토리가 중단된다. 이 영화에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모습이 없다.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인물로 화를 내고 고집불통이 된 노인 덕수가 등장한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믿고 열심히 살았건만 그의 인생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국가가 그를 배신한 것이다.

국가는 그의 꿈을 앗아갔다.

20대부터 70대까지 모든 세대가 이 영화에 빠져드는 이유는 노인 덕수의 미래가 나의 미래 같을지도 모른다는 절망 때문일 수도 있다. 열심히 살았건만 그나마 하나 남은 가게마저 재개발을 추구하는 자본에 빼앗기는 불쌍한 노인의 모습에 공감하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나는 과거의 젊은 덕수처럼 살고 있고, 미래의 나는 현재의 늙은 덕수같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절망으로 인해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이 이루어진다. 어떤 점에서 이 영화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조장하기는커녕 국가에 대한 실망과 절망을 담고 있다.

개인은 죽어라고 노력하지만,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으니 결국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와 <국제시장>, 비슷한 서사 그러나 다른 결말

<국제시장>을 본 독자라면 느꼈겠지만, 본 영화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톰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의 영화언어를 상당 부분 차용했다.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주인공은 베트남 전쟁, 반전시위, 핑퐁외교, 워터게이트 사건 등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국제시장>의 주인공은 흥남철수, 파독광부, 베트남전쟁, 이산가족상봉과 같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에 자의반타의반으로 연결된다.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주인공이 케네디, 닉슨 등 유명 인사를 만나는 장면이 있고 <국제시장>에서는 주인공이 정주영, 앙드레 김, 이만기, 남진 등의 유명인사를 만난다. 포레스트 검프와 같이 덕수는 우직함과 정직함 하나로 힘든 인생을 관통한다. 하지만 그 결론은 다르다.

<포레스트 검프>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인생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룬 모습을 보인다. 덕수는 자그마한 가게 하나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나마 빼앗길 위기에 처하고 고집불통으로 타인에게 외면받는 모습이 되어 있다. 어쩌면 미국에 사느냐 한국에 사느냐에 따라 인간의 처지와 운명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전 세계에서 똑똑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하려고 몰려드는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인구가 감소하면서 내리막을 걸을 수도 있다. 실제로 <포레스트 검프>가 나온 1994년 이후, 미국은 IT혁명을 주도하며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이어가고 있다. 9·11 사태의 충격도 극복하고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도 극복했다.

만약에 영화가 미래를 예언한다면, 국제시장이 암시하는 한국의 미래는 어쩌면 덕수의 미래만큼 암담할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모습을 그린 휴머니즘 영화

굳이 <국제시장>의 장르를 고르라고 하면, 필자는 휴머니즘 영화라고 하겠다. 불행한 삶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 이를 다루는 영화다. 곤경을 극복해내는 영화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휴머니즘 영화가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최근 흥행작인 <인터스텔라> 역시 화려한 CG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딸을 다시 만나는 과정을 그린 휴머니즘 영화다. <포레스트 검프> 역시 남자 주인공인 <포레스트 검프>가 여자 친구였던 제니와 사랑을 이루어내는 휴머니즘 영화다.

<국제시장> 역시 덕수가 전쟁 때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과의 재회를 위해서 인내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 휴머니즘 영화다. 그런 맥락에서 이미 노인이 된 덕수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는 것에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런 윤제균 감독의 휴머니즘 성향은 <해운대>에서도 드러난다. 얼핏 생각하면 <해운대>는 재난 영화다. 그런데 그 흔하디흔한 재난 영화를 살린 것은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스토리 때문이었다. 우선 최만식(설경구 분)과 강연희(하지원 분)의 연애라인이 죽음을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으로 이뤄진다.

이혼하고 헤어진 김휘(박중훈 분)와 이유진(엄정화 분)이 딸을 위해서 서로를 희생한다. 구조요원 최형식(이민기 분)은 김희미(강예원 분)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인명을 구조하다 목숨을 잃는다. 이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사연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런 점에서 윤제균 감독은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닌 휴머니스트다. 덕수의 어머니, 고모 그리고 아내 영자, 그리고 친구 달수까지, 그들이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이야기가 국제시장인 것이다. 좌도 우도 아닌 그저 사람에 대한 영화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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