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리스트 몰리 세이델, 운동으로 뇌질환을 극복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0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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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한 의료 사이트(WebMD)에서 2020 도쿄올림픽 여자마라톤 동메달리스트 몰리 세이델(29·미국)이 어떻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극복하고 있는지를 조명했다.

몰리 세이델이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3위로 골인하며 포효하고 있다. 세이델 인스타그램.
몰리 세이델이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3위로 골인하며 포효하고 있다. 세이델 인스타그램.
세이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탓에 1년 뒤인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2시간 27분 46초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역사상 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메달을 획득한 미국 3명의 선수 중 1명이 된 세이델은 비교적 늦은 노트르담대학 재학 시절 강박장애(OCD) 판정을 받았고, 몇 년 뒤 ADHD 판정을 받았다. 이 사이트는 “세이델이 매일 정신 건강을 잘 지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세이델의 말이다.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어느 순간 마라톤 완주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제가 타고난 마라톤 선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닙니다. 전 매일 어떻게 운동할지 고민하고 훈련하고 있어요. 제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이델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난 운이 좋다. 마라톤 선수로 회복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신도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라톤 선수로 나를 조절할 줄 알고, 또 다양한 호흡법으로 진정할 수 있어 버티고 있다. 이런 방법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있고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몰리 세이델이 도쿄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동메달을 받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 세이델은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라고 했다. 세이델 인스타그램.
세이델은 ADHD 판정을 받은 뒤 약물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을 썼지만 “운동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약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증상이 심할 땐 약물요법을 쓰지만 운동 선수이다보니 도핑에 신경 써야 해 세계반도핑위원회(WADA)와 미국반도핑위원회(USADA)에 자문을 받아 먹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번거롭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약물보다는 운동에 집중하며 마인트컨트롤과 호흡법 등으로 버티고 있다.

세이델은 지금은 은퇴한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8)를 연상케 했다. 펠프스도 ADHD를 극복하고 4개 올림픽(2004년 아테네~2016년 리우)에서 금메달 23개 등 총 28개의 메달을 획득한 선수다. 2016 리우올림픽 때 여자체조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던 시몬 바일스(26·미국)도 ADHD를 극복했다. 어렸을 때 ADHD로 진단받은 펠프스와 바일스는 수영과 체조로 ADHD를 극복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세이델은 대학 때 판정받았지만 줄기차게 노력해 올림피언이 됐다. 세이델과 마찬가지로 바일스는 약물도 병행했지만 펠프스는 운동으로만 극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세이델 사례를 계기로 ADHD와 운동과의 관계를 알아봤다.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가 2016 리우올림픽 수영 남자 접영 200m에서 우승한 뒤 포효하고 있다. 펠프스도 ADHD를 수영으로 극복했다. AP 뉴시스.
최근 과학적 연구 결과 펠프스와 바일스의 사례를 보듯 운동이 ADHD 극복에 좋은 효과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영이나 체조에 집중하며 몸을 단련시킬 때 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게 과학의 결과물이다.

운동을 하면 뇌신경전달 물질인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가 생성되고 활성화된다. 이런 결과는 과거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졌지만 존 레이트 하버드메디컬스쿨 교수가 2007년 무렵 ‘불꽃: 운동과 뇌에 대한 혁명적인 신과학’(Spark: The Revolutionary New Science of Exercise and the Brain)이란 책을 쓰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 책은 운동하면 뇌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미국의 시몬 바일스가 2016 리우올림픽 체조 여자개인종합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기뻐하고 있다. AP 뉴시스.
미국의 시몬 바일스가 2016 리우올림픽 체조 여자개인종합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기뻐하고 있다. AP 뉴시스.
이후 더 많은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레이티 박사는 이 책에서 “운동하면 머리가 활성화된다. 바로 BDNF가 생성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결과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과거 BDNF는 그저 신경성장 인자로만 인식됐을 뿐이었다. 이 책에서 운동과 BDNF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분석한 것이다. 이 책에선 운동을 하면 BNDN가 활성화돼 공부도 잘하게 되고, 집중도 잘 된다고 했다. 치매도 예방된다고 했다. 물론 ADHD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올 3월 영국스포츠의학저널(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에는 ‘고강도 운동이 성인들의 정신 건강을 크게 개선시킨다(High-Intensity Exercise Greatly Improves Mental Health in Adults’)란 논문을 게재했다. ADHD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정보를 주는 ‘ADDITUDE’에서 메타 분석한 결과다.

연구 결과 짧은 시간 격렬한 운동은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감 해소에 도움이 됐다. 장기간 고강도 운동은 ADHD가 동반하는 우울증과 불안을 개선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건강하거나, 정신장애가 있거나, 병이 있는 성인들을 연구한 97개의 논문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나왔다. 무산소 운동인 근육운동, 무산소와 유산소 혼합 운동, 스트레칭, 요가 등 모든 형태의 운동이 정신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ADDITUDE가 2017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ADHD 질환을 앓고 있는 1563명 중 절반 이상이 ‘운동을 했을 경우 ADHD 증상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고 했다.
몰리 세이델(가운데)이 도쿄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아프리카 선수들하고 경쟁하고 있다. 세이델 인스타그램.
몰리 세이델(가운데)이 도쿄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아프리카 선수들하고 경쟁하고 있다. 세이델 인스타그램.
다시 세이델로 돌아가 보자. 세이델은 ADHD 판정을 받은 뒤 여러 치료법을 사용하다 결국 운동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과잉행동(Hyperactivity)이 긍정적으로 달리기로 이어져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줬다. 과잉행동을 하는 경우 특정 스포츠에 빠지게 되면 보다 더 훈련에 매진하는 경향을 보인다. 달리다 보니 집중할 수 있었다. 운동을 하고 난 뒤 집중력이 좋아져 숙제도 쉽게 할 수 있었다. 운동의 이런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더 운동에 매진하게 됐다.

세이델은 주당 200km를 넘게 달린다. 그는 “뇌가 잘 돌아갈 땐 훈련 중 코스 이탈도 하지 않는다. 42.195km풀코스도 잘 달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뇌가 짜증이 날 땐 집중할 수 없고, 컨디션도 엉망이 된다. 그럼 모든 것을 망치게 된다”고 했다. 세이델은 “어떤 측면에선 내 뇌가 내가 해야 할 스포츠(마라톤)에 최적화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이라도 운동에 등한시하면 뇌가 통제 불능이 된다”고 했다. 세이델이 모든 신경을 마라톤과 훈련에 두고 있는 이유다.
송홍선 박사.
송홍선 박사.
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원(운동생리학 박사)은 “일종의 운동의 선순환 효과로 볼 수 있다. 운동하면 BDNF 등 뇌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호르몬이 활성화돼 ADHD 등 증상이 호전되니 세이델 등 선수들이 운동하는 좋은 습관에 빠져든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운동에 빠져들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럼 온전히 자신이 하는 운동과 자신의 몸상태(호흡, 피로도 등)에만 집중하게 된다. ADHD 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온전히 하나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에선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미국 등에선 운동을 ADHD 치료와 개선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이델은 ADHD를 통제하기 위해 의사의 조언 등 다양한 옵션을 찾고 있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는 ADHD 관련 의학 논문을 읽으면서 자신의 증상과 비교해 연구하고 있다. 자신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이델은 약물보다는 대화 요법, 명상, 호흡 등 조합시켜 뇌를 컨트롤하고 있다. 그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동도 가급적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후원사와의 관계 때문에 인스타그램 등을 하긴 하지만 SNS가 내 뇌에 가장 해롭기 때문이다”고 했다.

몰리 세이델이 2022년 열린 제126회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해 달리고 있다. 고관절 부상으로 중도에 기권했지만 세이델은 마라톤이 있어  ADHD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세이델 인스타그램.
몰리 세이델이 2022년 열린 제126회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해 달리고 있다. 고관절 부상으로 중도에 기권했지만 세이델은 마라톤이 있어 ADHD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세이델 인스타그램.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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