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경찰관에 관한 ‘TMI’… 잠재적 범죄자의 일탈행동 막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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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시카고대 과학자들 실험 결과

동네 경찰에 관한 사소한 개인정보(TMI)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위쪽 사진). 아래쪽 사진은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이 2017년 11월과 2018년 1월 사이 약 3주 간격으로 뉴욕시 39개 주거지역의 주민들에게 발송한 우편물. 그 지역 경찰의 고향과 취미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NYPD·미국 시카고대 제공
동네 경찰에 관한 사소한 개인정보(TMI)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위쪽 사진). 아래쪽 사진은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이 2017년 11월과 2018년 1월 사이 약 3주 간격으로 뉴욕시 39개 주거지역의 주민들에게 발송한 우편물. 그 지역 경찰의 고향과 취미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NYPD·미국 시카고대 제공
미국 시카고대 과학자들이 2017년 뉴욕 경찰들과 협력해 범죄 심리에 관한 실험을 진행했다. 2017년 11월과 2018년 1월 사이 약 3주 간격으로 뉴욕시 69개 주거 지역 중 39개 지역에 사는 주민에게 그들의 이웃에 사는 경찰이 좋아하는 음식, 스포츠팀 등 개인정보를 담은 우편물을 발송했다. 3개월 뒤, 우편물을 발송한 주거지역의 범죄율이 우편을 발송하지 않은 나머지 30개 지역에 비해 최소 5%에서 최대 7% 감소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아누즈 샤이 시카고대 행동과학과 교수는 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관련 내용을 담은 논문을 공개하면서 “익명성 뒤에 숨은 잠재적 범죄자가 개인정보를 통해 이웃인 경찰을 이해하게 되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범죄 행위를 들킬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범죄율 감소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익명성을 약화시키는 다양하고 간단한 심리 전략만으로 범죄를 줄일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소개했다.

○ 익명성 부작용 해결책으로 제시된 휴리스틱

연구팀은 “익명성에 대한 인식 수준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아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 점을 활용하면 익명성의 부작용을 줄일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익명성은 자유롭고 진실한 의사표현이 가능하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말과 행동에 대한 개인의 책임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반사회적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의 악성 댓글이나 전화 상담원에 대한 언어폭력이 익명성 뒤에 숨은 대표적 일탈 행위다.

행동분석학자들은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휴리스틱에 주목했다. 행동경제학에서 나온 이 용어는 인간은 복잡한 과제를 간단한 판단으로 단순화해 합리적 근거 없이 판단한다는 개념이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합리적인 존재임을 증명해주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자신이 타인과 느끼고 있는 유대감을 합리적 근거 없이 타인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현실에선 마주친 적이 없는 연예인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현상이 대표적 사례다.

휴리스틱은 어떻게 익명성의 부작용을 줄일까. 자신이 누군가를 아는 만큼 그도 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익명성이 보장될 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 사회적 관계에서의 휴리스틱 실험으로 입증

이런 특성은 샤이 교수팀이 뉴욕시 주거지역을 대상으로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성인 남녀 168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설문 참가자에겐 거주지역과 결혼 여부, 직업 유무 등 개인 신상을 묻고 이 정보를 자신이 전혀 모르는 한 사람에게만 공유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이들을 다시 2개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게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알려주고 나머지 그룹에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다음 모든 참가자에게 ‘상대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반응은 엇갈렸다. 다른 사람의 정보를 제공받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상대방이 나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구팀은 또다른 1014명에게 본인 정보 중 맞는 내용 4개와 틀린 내용 1개를 말하게 한 뒤 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 과연 거짓을 골라낼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는지 물었다. 그 결과 정보를 제공받은 그룹은 41.1%가, 그렇지 않은 그룹은 33.3%가 거짓이 드러날 것 같다고 답했다.

과학자들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익명성은 위협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과 옥스퍼드대, 스위스 루가노대 연구팀은 올해 1월 휴대전화 번호와 간단한 기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개인을 식별해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왓츠앱’에 등록된 휴대전화 번호만으로 4만 명 중 15%가 실제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고 닉네임과 사용자의 행동과 관련된 위치나 시간 정보만으로 개인을 52%까지 식별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범죄율 심리학#경찰관 tmi#범죄율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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