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청업체 250만명분 배송… 옮겨싣는 과정서 문제 생긴듯”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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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백신 운송 원청업체 대표 주장
병의원들 “종이상자에 담아 배송”
차량 온도 유지등 교육소홀 가능성
美-WHO는 담당자-장비 엄격 규정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 예방접종의 전면 중단을 초래한 ‘백신 상온 노출’은 유통업체의 2차 하청업체가 물량을 배송하던 중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백신의 낮은 입찰가가 유통 사고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과 관련해 조달청 등과 함께 입찰 방식의 적정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낮은 입찰가로 여러 차례 유찰이 됐고 이 때문에 배송 일정이 촉박해졌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유통업체인 신성약품의 김진문 대표는 2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수도권과 충청, 강원 지역은 1차 하청을 준 업체 S사가 직접 배송했는데 호남 등 일부 지역은 (S사가) 재하청을 맡겼다”며 “재하청 업체가 큰 트럭에서 작은 트럭으로 백신을 옮겨 싣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밝혔다. 신성약품은 정부와 조달계약을 통해 무료 접종에 쓰일 독감 백신 1259만 도스(dose·1도스는 1회 접종량)를 전국의 병의원과 보건소에 배송하기로 한 업체다. S사가 직접 배송한 물량은 상온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신성약품 측은 재하청 업체를 통해 지방으로 간 물량이 250만 도스 정도라며 이 중 17만 도스가 상온에 노출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약업계에선 규모가 작은 업체가 재하청을 통해 백신 배송을 맡다 보니 품질 관리에 소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백신을 운송할 때는 차량 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비 등을 갖춰야 하는데 재하청 과정에서 운송업체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7월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백신 유통업체는 운송용기에 유지 온도와 시간 등을 기재하고 상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된 재하청 업체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냉장차 문을 열어놓은 채 작업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백신이 종이상자에 담겨 배송됐다는 병의원들의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세계보건기구(WHO)의 백신 운송 가이드라인에는 훈련된 배송 담당자와 온도 측정 장비를 갖추도록 돼 있다. 미국 등에서는 냉장차 안 온도를 자동으로 측정해 실시간으로 보건당국과 유통업체에 전송하는 장비를 주로 쓴다. 또 적정 온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색깔이 검게 바뀌는 특수 스티커를 백신 보관용기에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운송 담당자가 온도를 재서 수기로 보건당국에 제출하는 경우가 많아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전국 병원에선 무료 독감 백신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유료 접종을 하려는 시민들이 많았다. 부산 동래구의 한 내과병원에선 무료 접종 대상인 어린이와 노인 17명이 유료로 백신을 맞았다. 병원 관계자는 “유료 접종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백신 접종 예약 건수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비영리 국제 보건단체인 PATH(Program for Appropriate Technology in Health)가 WHO 자료를 바탕으로 2012년에 작성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인 사노피, GSK, 크루셀의 독감 백신은 25도 상온에서도 최대 2∼4주 동안 품질에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37도에선 하루 만에 변질됐다.

이소정 sojee@donga.com·전주영·송혜미 기자
#독감 백신#백신 상온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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