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알파고를 보며 김종훈을 생각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박근혜 정부의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내정됐던 미국 벨연구소 김종훈 소장은 인공지능(AI) 로봇 나노기술 3D프린터 사물인터넷 전문가이다. 그는 창업해 억만장자가 됐고 정보통신기술(ICT) 메카인 벨연구소를 탁월한 리더십으로 이끌었다. 그가 낙마하자 “이런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한국은 글로벌 인재 영입을 포기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들을 들었다. 기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바둑 아닌 인재경쟁

이번 대국을 치른 구글의 진짜 목적은 AI 인재 확보였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는 측근들에게 “우리가 가진 핵심인력은 10여 명밖에 안 된다. 이번 대국을 보고 AI 인재들이 구글에서 연구하기를 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1월 구글이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알파고 논문을 발표하기 몇 시간 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가 자신들의 AI 바둑 프로젝트를 페이스북에 소개한 것을 두고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두 회사 경쟁은 AI 바둑이 아니라 인재경쟁”이라고 했다.

기자는 그제 마지막 대국이 있던 포시즌스호텔을 직접 가보고 구글의 힘을 새삼 확인했다. 엄청난 규모의 내외신 기자들의 열기도 놀라웠지만 최고급 뷔페 음식들이 즐비한 중앙 탁자를 중심으로 구글 직원들이 먹고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자유로움 속에서도 진지함이 느껴졌다.

책 ‘글로벌 인재’를 낸 스탠퍼드대 신기욱 교수도 “이번 대국을 보며 알파고보다 알파고를 만든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은 인재경쟁”이라며 “글로벌 인재를 끌어오면 단지 ‘인적 자산(human capital)’만 오는 게 아니라 그가 가진 브랜드, 경험, 정보, 인맥 같은 사회적 자산(social capital)이 함께 온다는 걸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올 사람 입장에서 ‘와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

전직 서울대 총장은 “노벨상급 석학을 교수로 영입했지만 오래 있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문화 포용력도 떨어지는 데다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환경이 안 되어 있고 진지한 연구 풍토도 없으며 돈도 많이 주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라는 거였다.

이번 대국을 통해 충격도 받았지만 AI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은 큰 소득이다.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 ‘인공지능 수용’을 설파했고 미래창조과학부도 별도 팀을 만들어 계획을 짠다고 한다. 과학기술부처에서 일했던 한 공대 교수는 “기업들은 미래 기술 없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상이 걸린 지 오래니 정부는 기업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뒀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은 혁신 리더(innovation leader)는 어렵고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만 가능한 것 같다”는 한 학자의 얘기도 귓전을 때린다.

꼭 한국인이어야 하나

1980년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정보화사회를 예견했을 때 뭔지 감이 잡히지 않으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났다. 한국은 그런대로 잘 적응해왔으니 AI의 미래에 대해서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재가 없다고들 하는데 꼭 한국인이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전 세계 뛰어난 두뇌들이 마음껏 연구하고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 전 소장은 새 벤처기업을 만들어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인공지능#ai#인재경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