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앞 나서는 게 두려운 ‘사회공포증’… ‘아바타’ 치료로 일상 복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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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인지치료’ 효과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오른쪽)가 가상현실 클리닉 센터에서 ‘사회공포증’ 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환자는 특수안경을 쓰고 가상현실 속에서 사회공포증을 이겨내는 훈련을 받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오른쪽)가 가상현실 클리닉 센터에서 ‘사회공포증’ 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환자는 특수안경을 쓰고 가상현실 속에서 사회공포증을 이겨내는 훈련을 받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앞에 나와서 자기소개를 3분간 해 보세요.”

강남세브란스병원의 가상현실 클리닉 센터. 텅 빈 공간이지만, 특수안경을 쓰고 둘러보면 사람이 꽉 찬 교실처럼 보인다. 마치 강단 위에서 강의실을 내려다보는 듯한 그림이 펼쳐지는 것이다.

가상현실 속 학생들은 하품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이런 상황을 진짜처럼 여기고 훈련해야 하는 환자들이 있다. 바로 ‘사회공포증’ 환자들이다. 사회공포증이란, 망신이나 놀림을 당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타나는 불안장애 중 하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불안장애로 진단받은 인원은 2008년 39만7950명에서 2013년 52만2051명으로 5년 새 30%가량 증가했다. 불안장애 중 특히 사회공포증은 젊은 사람들에게 많은데 이들 중 상당수는 면접, 발표 등을 자꾸 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사회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상현실클리닉은 사회공포증 환자에게 실제 같은 훈련 기회를 주면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개념 치료법이다. 약 10년간 이 프로그램을 연구해 온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가상현실 인지치료’의 세계를 알아본다.

○ ‘가짜 현실’에서도 진땀 빼는 환자들

임상심리사가 화면을 조작하자 대학 강의실 모습이 나타났다. 20여 명의 대학생이 앉아 있는 강의실 앞에서 발표하는 훈련을 하기 위한 것. 사회공포증이 심한 환자는 ‘가짜 현실’에서도 공포감을 느낀다. 환자가 너무 떨거나 두려워하면 임상심리사가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 수를 최소 7명까지 줄인다.

가상현실클리닉에서는 컴퓨터에 입력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치료를 진행한다. 위 사례처럼 발표를 연습하기도 하지만 데이트 제안, 직장 동료와 대화 등 수십 가지 상황을 설정해 연습시키기도 한다. ‘데이트’ 화면을 선택하면 귀엽게 생긴 여자 주인공이 나타나 “우리 어디 갈까?” 하고 묻는다. 환자가 아무 말 못 하면 임상심리사가 환자한테 “여기에 답해 보라”고 대답을 유도하기도 한다. 환자는 이때 “○○레스토랑에 갈까?” “뭐 먹고 싶니?” 등 답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연습한다.

연말 회식 자리에서 끈질긴 술 권유를 거절하는 것도 연습해 볼 수 있다. ‘술집’으로 설정을 바꾸면 회사 동료인 사람이 등장해 “딱 한 잔만”이라며 술을 권한다. 이어서 온갖 이유를 대면서 술을 억지로 권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 설정은 사회공포증 환자의 대인관계 기술을 높이는 훈련에도 사용되지만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인지치료에도 활용된다.

○ 어떤 사람이 치료를 받나

아무리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수줍음, 불안 등 내향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가상현실 인지치료가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까. 김 교수는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사회불안 자가척도’를 마련했다. 이 기준대로 채점해 보았을 때 점수가 높게 나오면 치료를 고려해 볼 만하다.

기준이 되는 항목은 총 5가지. △권위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때 불안하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불안하다 등의 항목에 대해 △전혀 아니다(0점) △약간 그렇다(1점) △매우 그렇다(2점)로 답한 뒤 점수를 합산해야 한다. 합산한 점수가 4∼6점이면 사회불안 증세가 있지만 혼자 노력으로 해결이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7점 이상 나온다면 클리닉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가상현실 인지치료는 환자 상태에 따라 약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1회 훈련에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반. 비용은 7만 원 선이다.

김 교수는 “젊은 사람의 경우 사회공포증이 심해지면 휴학을 하거나 심지어 직장을 포기하기도 한다”며 “가상현실 인지치료는 일상생활로 건강하게 복귀하기 위한 실전훈련”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가상현실#사회공포증#아바타#인지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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