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간호사의 병원 제대로 알기]응급실 진료는 접수순 아냐… 야간 생명 위독할때만 가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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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오해와 진실
김현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외과중환자실 책임간호사
야간에 가벼운 질환이 생겼다면 필자는 되도록 아침까지 기다리라 말하고 싶다. 처방전이라도 받을 요량으로 무작정 응급실을 찾았다간 진료도 보기 전에 5만 원이 넘는 큰돈을 예상치 않게 지출할 수도 있다. 즉 감기나 가벼운 질환의 경우, 응급환자의 대상이 되지 않기에 응급의료 관리료를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급한 응급치료를 요하는 상황은 언제일까?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는 급성 의식장애나 급성 신경학적 이상, 구토·의식장애 등의 증상이 있는 머리 부위 손상,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증상, 급성 호흡곤란, 심장질환으로 인한 급성 흉통, 지혈이 안 되는 출혈, 급성 위장관 출혈, 화학물질에 의한 눈의 손상, 얼굴 부종을 동반한 알레르기 반응, 소아 경련성 장애 등을 말한다.
만약 현재 발생한 질환이 응급상황에 속한다면, 당연히 잠시도 망설이지 말고 가까운 응급실로 향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다른 병원을 경유해 가는 경우라면 반드시 소견서를 챙겨야 하는 점이다. 이는 짧은 시간 내 생사의 희비가 엇갈리는 응급실에서 불필요한 질문 없이(물론 확인은 하겠지만) 환자의 상태를 신속히 파악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평소 고혈압과 당뇨병, 신장질환 등과 같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면 평소에 복용하는 약이나 처방전을 챙겨 가도록 한다. 또 어떤 약을 한꺼번에 과량 복용했다면 빈 약봉지라도 들고 가는 게 의료진이 증상을 빨리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부 사람들은 접수부터 하라는 직원의 말에 병원이 생명보다 돈을 더 밝힌다고 말한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을 요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접수를 먼저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접수를 해야만 전산에 이름이 뜨고 차트를 만들 수 있어 필요한 처방과 검사를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대부분의 병원이 이러한 시스템 아래 움직인다.
만일 응급은 아니지만 많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반드시 응급실에서 진료를 봐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여유분의 시간도 함께 가져가길 바란다. ‘진짜’ 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찾으면 이에 대한 의사의 처치가 끝날 때까지 고스란히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응급실은 오는 순서대로 진료를 봐주는 진료소가 아니다.
나도 얼마 전 밤늦게 설거지를 하다 깨진 유리그릇에 손가락이 베어 내가 일하는 병원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다. 뼈까지 다 보일 정도로 심하게 베었지만 다행히 동맥과 신경은 무사히 비켜 나가 출혈은 거의 없었다. 만약 동맥이 끊겼다면 감당할 수 없는 출혈이 있었을 테고 분명 응급실 진료 1순위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사한 동맥을 들여다보며 1시간 넘게 기쁜 마음으로 응급실 가기를 기다렸다가 오른쪽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를 열 바늘 넘게 꿰맸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기쁜 마음으로 응급실에서 치료 받기를 기다릴 수 있다면 모를까, 응급실은 정말 ‘응급’ 환자만이 가야 하는 곳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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