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거리 자유자재 조절… 수정체 닮은 ‘꿈의 렌즈’ 나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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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통신硏 첨단 투명소자 개발 눈앞

경기욱 센터장(뒤쪽)이 동료 연구원과 함께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변신렌즈’를 테스트하고 있다. 뒤편 모니터로 초점이 또렷하게 맞은 영문 글자가 보인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경기욱 센터장(뒤쪽)이 동료 연구원과 함께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변신렌즈’를 테스트하고 있다. 뒤편 모니터로 초점이 또렷하게 맞은 영문 글자가 보인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17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한 연구실. 연구원이 전압을 바꾸자 지름 1cm도 안 되는 작고 둥근 투명 플라스틱 렌즈가 미세하게 부풀어 올랐다. 맨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수준의 아주 작은 변화였다. 그 순간 렌즈 밑에 있던 흐릿한 알파벳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렌즈의 곡률이 변하면서 도수가 달라졌고 초점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전압을 조금 바꿔줬을 뿐인데. 눈앞에 있는 작고 투명한 렌즈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부풀었다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경기욱 투명소자 및 UX창의연구센터장은 “렌즈의 초점거리가 자유자재로 바뀌는 ‘궁극의 렌즈’”라며 “안경이나 망원경 렌즈 등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람 수정체 흉내 낸 ‘변신렌즈’ ‘변신액정’

사람의 눈은 책을 보다 말고 갑자기 고개를 들고 시선을 멀리 향해도 주변 풍경을 또렷하게 인식한다. 눈동자 속에 든 수정체의 형태가 실시간으로 변하며 스스로 초점을 잡아 주기 때문이다.

그간 학계에서는 수정체와 동일한 기능을 하는 ‘만능 렌즈’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플라스틱으로 주머니를 만들고, 내부에 기름 같은 액체를 채우는 방법도 연구됐다. 액체를 넣고 빼는 과정에서 모양을 변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펌프나 모터 등 부품이 추가로 필요해 안경 렌즈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ETRI 측은 이런 방법 대신 ‘전기활성폴리머’라는 압전소자에 주목했다. 압전소자는 힘을 주고 누르면 전기가 발생하고, 반대로 전기를 흘리면 모양이 달라지는 특수 소자다. 압전소자를 재료로 써서 전압만 바꿔주면 얼마든지 초점거리가 바뀌는 ‘변신렌즈’를 개발할 수 있는 셈이다.

경 센터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ETRI가 추진하는 창의과제 중 하나로 3년째 이 같은 투명소자를 개발하고 있다. 경 센터장은 “전압으로 렌즈 두께를 조절하는 원천 기술 개발은 거의 끝났다”면서 “렌즈 변형에 걸리는 시간이 1000분의 1초 정도로 매우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변신렌즈에 이어 최근 주목하는 아이템은 ‘변신액정’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에서 문자메시지를 쓸 때 자판에서 엉뚱한 글자를 누르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화면에 자판이 나타나면 손가락이 닿는 글자 부위만 볼록하게 솟아오르도록 만들어 오타를 줄이는 변신액정을 개발 중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전기활성폴리머 투명소자를 이용해 개발한 ‘촉각센서’. 휘거나 접을 수 있고 누르는 힘의 크기도 감지할 수 있어 다양한 전자기기에 응용할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전기활성폴리머 투명소자를 이용해 개발한 ‘촉각센서’. 휘거나 접을 수 있고 누르는 힘의 크기도 감지할 수 있어 다양한 전자기기에 응용할 수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 누르는 힘까지 감지하는 ‘투명 촉각센서’


연구팀은 올해 6월 ‘투명 촉각센서’도 개발했다. 전기활성폴리머를 이용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누르는 힘의 크기까지 감지하는 촉각센서를 만들어 재료 분야 권위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 7월호 표지논문으로도 발표했다.

경 센터장은 “현재 스마트폰의 액정은 인체의 미세한 전류를 감지하는 정전기식 방식이어서 피부의 접촉 여부를 인식하는 게 전부”라면서 “투명 촉각센서는 누르는 힘까지 감지할 수 있어 이 센서로 액정을 만들면 펜으로 화면에 그림을 그릴 때 훨씬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투명 촉각센서가 얇고 잘 휘어지는 만큼 미래형 두루마리 방식의 스마트기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투명 촉각센서는 지난달 일본 쓰쿠바(筑波)에서 개최된 ‘아시아 햅틱스 2014’ 학술대회에서 ‘최우수 시연상(Best Demonstration)’과 ‘최고 인기 시연상’을 모두 거머쥐면서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연구팀의 수상 사진은 아직도 대회 홈페이지 첫 화면에 걸려 있다.

경 센터장은 “폴리머 소재는 어떻게 제조하는지에 따라 투명도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면서 “90% 이상 투명한 소자를 만들어 센서나 렌즈로 가공하는 기술은 우리가 미국보다 앞서 있다”고 말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변신 렌즈#초점#촉각 센서#투명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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