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Beauty/첨단의학을 달린다]
박종훈 고려대 정형외과 교수 ‘수혈 자제론’
미국은 지난 5년간 40% 줄여 헌혈 늘어나도 수혈감소 추진
환자회복률 높이는 다른 길 많아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수혈은 응급 상황일 때만 예외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며 “철분주사제 등 보조제를 활용하면 수혈을 대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대안암병원 제공
“수혈 치료는 다른 대안이 없거나 응급 상황일 때만 시행돼야 합니다. 무분별한 수혈은 반드시 제한돼야 합니다.”
9일 고려대안암병원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가진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사진)는 인터뷰 내내 “수혈은 결코 좋은 치료라고 할 수 없다”고 강력히 외쳤다. 박 교수는 “질병관리본부가 제시한 수혈 가이드 라인에서도 수술 후 혈색소 농도가 7g/dL 이하에서 수혈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를 지키는 병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수혈로 인한 부작용 상당
다른 사람의 피가 본인 몸속에 들어오는 것은 장기이식과 다를 게 없다. 타인의 피 세포가 자신의 피 세포와 섞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인체를 빠져나와 보관된 피는 보관 팩 안에서 변화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오히려 수혈받은 후 혈액순환 장애가 발생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수혈로 인한 장기 손상 외에도 수혈은 수술 후 감염 및 사망률을 높이고, 입원 기간을 늘리는 등 각종 부작용을 부른다”고 말했다.
피를 보관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적혈구는 시간이 지나면서 보관 팩에서 빠르게 변형된다. 탱글탱글하던 세포가 다 터지고 훼손된다. 이는 자가 수혈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수술 전 자신의 피를 뽑아놓았다가 다시 사용한다고 해도, 한번 몸속에서 빠져나온 피는 전과 다르다. 이 피 또한 보관 팩에서 변형이 일어난다.
박 교수는 “실제 내 진료 환자들 중에도 수혈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며 “수혈 후 면역반응에 문제가 생겨 두드러기가 나거나 몸이 아파 시름시름 앓았다는 등 그 증상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수혈 대체 요법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
한국과 달리 미국이나 중국 등 선진국에서는 수혈 감소정책으로 가고 있다. 한국은 수혈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지만, 미국은 지난 5년간 수혈을 40% 가량 줄였다. 중국도 일찌감치 수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정책에서 감소 정책으로 전환한 지 오래다.
이는 혈액 관리 비용은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지만 혈액은 갈수록 모자랐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한국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국내 혈액 관련 사업비만도 약 1398억 원이 소요되고 있다. 하지만 혈액 보유량은 지난해 12월 기준 7.4일분에 불과하다. 고령화사회가 진행되면서 헌혈 인구층은 줄고 수혈받는 노년층이 증가하게 되면 수급 불균형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박 교수는 “수혈의 엄청난 부작용과 더불어 혈액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수혈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수혈을 하지 않고도 회복할 수 있는 노하우들은 이미 충분히 축적돼 있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보조제가 바로 페린젝트 같은 철분 주사제다. 사실 매일 피를 만들어내는 곳인 골수에서는 수술 등 출혈로 갑자기 체내의 피가 모자라게 되면 조혈능력이 향상된다. 평소보다 8배나 많은 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생기는 것. 박 교수는 “철분주사제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피의 부족분이 보충될 수 있지만 이때 5일에서 많게는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다”며 “피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인 철분 필요량을 단 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보조제를 사용하면 효과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조혈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수혈 응급상황 때만 예외적으로 활용해야
박 교수는 “수혈은 응급상황일 때만 예외적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응급상황이란 자기 피의 절반 정도가 수술 도중 빠져나갈 때, 칼에 찔리거나 큰 교통사고가 나는 등 부상을 입고 대량 출혈이 발생할 때 등을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 병원들은 피가 심하게 모자라지 않은 상태에서도 수혈을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체내의 피 중 3분의 1가량이 빠져나가도 우리 몸에 큰 이상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수혈을 자제하는 것은 환자 회복률을 높이고 불필요한 의료 재정을 감축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수혈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침인 ‘환자혈액관리’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교수는 “국내 혈액관리가 혈액 공급 위주의 정책이 아닌 수혈을 줄이는 정책으로 하루빨리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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