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휴대전화 ‘목소리’가 사라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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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통화에서 문자로 커뮤니케이션 대변화

‘내일 기자실로 찾아가면 되죠? 도착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만나서 함께 취재하기로 한 인턴기자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다음 날 물었다.

“왜 문자를 보냈니. 전화하지 않고?”

“바쁜데 방해될 것 같아서요.”

전화 걸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음성통화가 줄고 있다. 국내 통신업계에 따르면 휴대전화 가입자 한 사람당 음성통화 시간은 2008년 월 181분에서 2011년 172분으로 줄었다. 전체 음성통화량은 가입자 증가에 힘입어 그나마 매년 늘어났지만 지난해에는 이마저 처음으로 감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통신업계는 보고 있다. 대신 문자메시지, 모바일 메신저 등 ‘문자 대화’가 주요 통신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 외면받는 음성통화

공무원 정지연 씨(26·여)도 여간해선 음성통화를 하지 않는다. 그는 출근해 업무로 연락할 일이 생기면 구글 e메일인 ‘지메일’에 연동된 메신저를 켠다. “업무 상대가 다 구글을 쓰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아요. 보안이 필요한 사내(社內) 대화는 회사 그룹웨어에 깔려 있는 메신저를 쓰죠.”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카카오톡’과 비슷한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썼다. 일대일 대화, 그룹 대화…. 하루 50번 이상 메시지를 보내고 받았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비로소 휴대전화를 귀에 가져다 댔다. 하루에 서너 번밖에 없는 드문 일이다. “여보세요.” 정 씨는 퇴근 후 만나기로 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장소를 정했다.

정 씨가 유독 음성통화를 하지 않는가 싶어 구직 사이트인 잡코리아 회원 501명을 설문조사했다. 몇 가지 상황을 제시한 뒤 음성통화,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 영상통화 중 어떤 것을 사용할 것이냐고 물었다. 비용은 모두 같다고 전제했다.

8가지 상황 가운데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음성통화를 선택한 것은 ‘태풍 피해를 입은 고향 부모님께 안부를 물을 때’, ‘업무상 소개받은 사람에게 처음 연락할 때’ 두 번뿐이었다.

‘친구들과의 점심 약속에서 장소와 시간을 알려줄 때’엔 음성통화 선택 비율이 12.5%로 확 낮아졌다. 교제 중인 이성친구(또는 배우자)와 한밤중에 대화할 때, 오랜만에 웃어른에게 인사를 드릴 때에도 전화를 거는 사람은 10명 중 3, 4명꼴에 불과했다.

○ “마당발이라…. 방해하기 싫어서…”

음성통화가 뒷전으로 밀린 까닭은 무엇일까. 배은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발이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소셜네트워크가 보편화하면서 개개인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맥을 쌓았다”며 “이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려다 보니 음성은 비효율적인 수단이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문자메시지와 모바일 메신저는 각자 편한 시간에 대화할 수 있는 ‘비동기(非同期)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대화 기록이 남아 있어 ‘대화의 상황 정보’를 파악하기도 쉽다. 한 번에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동시에 대화하는 바쁜 현대인에게 매력적인 수단이 된 이유다.

전화를 거는 행위가 곧 ‘시간을 빼앗는 무례한 일’이 됐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현경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음성통화는 상대의 일상을 방해하는 무례한 통신수단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분석했다.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전화를 걸 때 직접 대화해야 한다는 부담,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걱정 등 ‘커뮤니케이션 불안’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 대화 수단 달라지니 삶도 바뀌어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사는 윤영숙 씨(60·여)는 메신저를 쓴 뒤 딸과 더 가까워졌다. “사위에게 패딩 점퍼를 사줬는데, 그 옷을 입은 사위 사진을 딸이 메신저로 보냈어요. 이럴 땐 딸 부부와 함께 지내는 것 같아요. 전화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전화로 못할 말을 문자메시지나 메신저로 하게 되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도 변했다. 황하성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문자 대화는 부부 관계를 더 평등하게 만든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잡코리아 회원 설문 결과 이들은 음성통화보다 문자 대화를 할 때 상대방과 거리감, 답답함을 더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황 교수는 “대화량은 늘지만 친밀도 등 대화의 질이 떨어지는 ‘인터넷의 패러독스’가 휴대전화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풀이했다.

[채널A 영상] 여론조사 면접원 체험해보니 “50번 걸어 1번 통화”

김용석·정호재 기자 nex@donga.com

조재환 인턴기자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4학년
#휴대전화#음성통화#메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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