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뇌조직硏 브라질 ‘브레인뱅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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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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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샘플 4000개 보유… 알츠하이머병 해마부위 발병설 뒤집어

브라질 ‘브레인뱅크’에는 4000여 개의 인간 뇌조직이 보관돼 있다. 한 연구원이 뇌단백질을 분석하기 위해 수직으로 잘라 염색한 뇌조직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상파울루=이영혜 채널A 기자 yhlee@donga.com
브라질 ‘브레인뱅크’에는 4000여 개의 인간 뇌조직이 보관돼 있다. 한 연구원이 뇌단백질을 분석하기 위해 수직으로 잘라 염색한 뇌조직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상파울루=이영혜 채널A 기자 yhlee@donga.com
브라질 상파울루 시 도심 한가운데 있는 상파울루의대. 여느 대학과 다르지 않은 이곳에 세계 최대 뇌조직 연구소인 ‘브레인뱅크’가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전 세계 40여 개 뇌조직 연구소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로 이곳에 보관된 인간의 뇌는 4000개가 넘는다.

지난달 브레인뱅크를 찾았을 때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입구엔 경찰차 10여 대가 서 있고 직원들은 차에서 검은 물체를 꺼내 이동식 침대로 옮기고 있었다. 울고 있는 유족들을 보기 전까진 시신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시신이 줄지어 누워 있는 상파울루의대 부검실 한 층 위가 바로 브레인뱅크다. 뇌의 신경세포가 죽기 전 가능한 한 빨리 보존하기 위해 부검실과 가까운 곳에 둔 것이다.

“조금 전 부검을 마친 시신에서 기증받은 뇌입니다. 뇌 신경세포는 분리된 지 10시간만 지나면 대부분 죽는데 여기선 살아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볼 수 있죠.”

헤나타 파라졸릿 연구원은 순두부처럼 흐물거리는 뇌를 메스로 가르며 말했다. 어른 주먹 두 개만 한 1300g의 뇌가 순식간에 50개의 조각으로 변했다. 연구원들은 뇌조직에 번호를 매기고 기증자의 혈압 등 건강 상태와 생활습관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같은 뇌질환이라도 사람마다 진행속도와 증상이 다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생존 당시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상파울루의대에 위치한 브레인뱅크. 하루에 50구씩 부검이 이뤄지는 부검실 바로 위층에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대에 위치한 브레인뱅크. 하루에 50구씩 부검이 이뤄지는 부검실 바로 위층에 있다.
상파울루의대가 설립 9년 만에 세계 최대의 브레인뱅크를 보유할 수 있었던 건 브라질 정부 덕분이다. 브라질 정부는 사망 신고 시 부검 결과를 제출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우리 돈으로 150여만 원의 부검비용은 정부가 전액 지원했다.

2003년 설립된 브레인뱅크에는 상담전문 간호사가 있어 유족들에게 뇌 연구의 중요성을 설명함으로써 기증을 유도했다. 그 결과 현재는 유족의 90%가 뇌 기증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브라질은 뇌 연구 후발주자임에도 최근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 브레인뱅크 설립자인 레아 그린버그 미국 캘리포니아대 생물학과 교수는 2009년 알츠하이머병이 뇌의 뇌간에서 가장 먼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전까지는 알츠하이머병이 뇌의 해마에서 처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린버그 교수는 “병의 시작을 알기 위해서는 발병 전 건강한 뇌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이와 성별, 생활습관이 다양한 일반인의 뇌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곳은 브라질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4000여 개의 뇌조직은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 전 세계 뇌 연구자들을 브라질로 끌어들이고 있다. 40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연구한 헬무트 하인센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는 “인간의 질병은 복잡한 진화 과정에서 발생했다”며 “동물의 뇌를 갖고 원인을 알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시킨 쥐를 이용해 알츠하이머병을 연구하는데 유전적 원인으로 발병한 사람은 환자 중 2%에 불과하기 때문에 직접 사람의 뇌를 갖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연구진도 브레인뱅크를 이용하고 있다. ‘인간 뇌 프로테옴’ 프로젝트 공동위원장인 박영목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브레인뱅크에 보관된 뇌조직의 일부를 이용해 단백질의 종류와 위치, 양, 질병의 진행 단계에 따른 변형 등을 담은 ‘뇌 지도’를 제작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찾아내는 것이 뇌 지도 제작의 주된 목적”이라며 “뇌 지도는 새로운 개념의 뇌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보물지도”라고 설명했다.

브레인뱅크는 전 세계 연구자들과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국제회의를 2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한편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아르헨티나 유럽 등 20여 개국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린버그 교수는 “실제 인간의 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값을 매길 수 없다”며 “한국과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상파울루=이영혜 채널A 기자 yhlee@donga.com
#브레인뱅크#뇌조직#알츠하이머#해마부위 발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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