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사진찍기’…이런 숙제가 힘든 가정 있다는 것 알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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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부모가정 급증… 교육현장부터 인식개선을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A 군은 지난해까지 반장을 도맡은 모범생이었다. 지난달부터 학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더니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생의 등교까지 막았다. 야단치는 가족에게 물건을 마구 던지다가 엄마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A 군 엄마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다가 소아정신과에서 상담한 뒤 이유를 알게 됐다. 담임이 부모와 함께하는 숙제를 내주면서 “A는 아빠가 없으니까 도와주라”고 말한 이후로 반에서 놀림을 받는다고 A 군은 털어놨다. 몇 년 전 부모가 이혼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버티다가 교사의 무심한 한마디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혼 별거 사별 등으로 한부모가정 자녀가 크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모 중 1명과 18세 이하 자녀로 구성된 한부모가정은 2005년 137만6000가구(전체의 8.6%)에서 2010년 159만4000가구(9.2%)로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168만 가구, 2025년이면 200만 가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는 부모 중 한쪽이 숨지면서 한부모가정이 많이 생겼지만 최근에는 이혼이 주원인이다. 미혼모나 미혼부 한부모가정도 10% 이상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세심하게 대하지 않으면 A 군처럼 상처를 받기 쉽다.

○ 학교의 고민과 교사 위한 교육 절실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저학년에 한부모가정의 자녀가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초등학교의 50, 60대 교사 중 일부는 한부모가정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어서 학생을 대할 때 실수할 수 있다.

서울 성동구의 A초등학교 교장은 “내가 교사를 시작한 30년 전에는 한 학급이 60명 정도이고 이 중 한부모가정 자녀가 2, 3명이었는데 지금은 30명 정도의 한 학급에 10명까지 있다”면서 “학생들은 바뀌는데 교사들은 그대로라서 아직도 한부모가정을 문제가정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경기도의 초등학교에 부임한 초임 교사 나모 씨는“우리 반에 엄마 없는 아이가 3명 있는데 급식당번은 어머니만 참여해야 하므로 난감했다”면서 “교장선생님께 아버지들에게도 급식당번을 시키자고 했더니 ‘다른 어머니들이 불편해한다’ ‘남자가 밥 주면 애들이 싫어한다’며 반대했다”면서 한부모가정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한부모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도록 교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교육 당국이나 연수기관에 한부모가정 자녀를 지도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은 없다. 다문화 또는 탈북자 가정의 자녀를 지도하기 위한 연수는 많지만 한부모가정은 관심 밖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양부모 가정을 전제로 해서 숙제를 내거나 아빠 또는 엄마가 참석해야 하는 행사부터 없애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녀를 혼자 키우는 진모 씨(42·여)는 “평소엔 의젓한 중학생 아들이 아빠와 운동하기, 가족사진으로 캐리커처 그리기 같은 과제를 받아오면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이런 과제가 힘든 가정도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특히 사춘기에 이혼을 겪은 한부모가정 자녀의 경우 소속감을 찾기 위해 폭력 서클에 가입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지난달 28일 자살한 대구 여중생의 경우에도 1년 전 부모가 이혼한 뒤 힘들어했다고 친구들이 말했다.

○ 숨긴다고 능사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부모가정의 부모가 더욱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한부모가정이라는 사실을 숨기면 자녀들의 자존감이 도리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충남도교육청에서 학부모지원을 담당하는 박순옥 사무관은 “한부모가정에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스스로 드러내기를 꺼려 참여하지 않는 가정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부모가정 아이들이 부끄러워하거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양부모 가정만을 정상적인 가족으로 전제하고 기술한 교과서 내용도 고쳐야 한다.

사단법인 한부모가정사랑회의 황은숙 회장은 “한부모가정에 대한 교사의 편견을 줄이고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려면 학교 교육과정에 한부모가정 및 이혼 이해 교육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부모가정에 대한 정부와 학교의 지원이 활성화된다면 부자(父子)가정이냐 모자(母子)가정이냐에 따라 지원 방식을 세분화해야 한다. 모자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 혼자 된 여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문제가 된다. 부자가정은 실질적인 양육기술의 부족, 아이가 낮에 혼자 집에 남는 문제점이 있다.

일례로 부자가정에서 가장 많이 호소하는 고충이 학교 준비물이다. 아버지가 늦게 퇴근한 뒤 준비물을 사서 같이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 학교에서 부자가정 자녀를 위해 준비물을 공동구매하는 방법이 적절할 것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교육#편모가정#한부모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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