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짝’ 커플을 통해 본 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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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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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여대생, 고졸 정비사에 왜 끌릴까?

《“진짜 예쁘다… 솔직히 3호님이 제일 예뻐요.” “쟤는 외모뿐 아니라 학벌도 되고 직장도 되고….” SBS의 리얼리티 짝짓기 프로그램 ‘짝’은 불편하다. 일반인 남녀 10여 명이 ‘남자 1호’ ‘여자 3호’라는 표지를 달고 ‘애정촌’이라는 숙소에서 6박7일간 짝짓기에만 몰두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판 ‘동물의 왕국’이라고 눈 흘기는 사람도 많지만 눈길이 끌린다는 사람도 많다. 3월 23일 첫 방송 당시 6.2%였던 시청률은 24일 9.6%까지 올라 동시간대의 ‘강자’인 MBC ‘무릎팍 도사’(11.9%)를 바짝 뒤쫓고 있다(AGB닐슨미디어리서치 자료). 남녀 출연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상대를 고를까. 왜 명문대에 다니는 여성이 고졸 출신의 ‘블루칼라’에 끌리는 걸까. ‘짝’을 통해 맺어진 커플 19쌍의 짝짓기 과정을 진화심리학으로 들여다보면 궁금증들이 풀린다.》

배우 수애를 닮아 화제가 된 여성 출연자는 도시락을 함께 먹을 파트너를 정하는 대목에서 남자 7명 중 5명의 선택을 받았다.
배우 수애를 닮아 화제가 된 여성 출연자는 도시락을 함께 먹을 파트너를 정하는 대목에서 남자 7명 중 5명의 선택을 받았다.
남녀가 사귀는 과정에서 벌이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 ‘작업의 정석’ 포스터.동아일보DB
남녀가 사귀는 과정에서 벌이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 ‘작업의 정석’ 포스터.동아일보DB
○ 예쁜 여자들의 성공률은 100%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여자는 남자의 능력을 본다는 기본적인 명제가 ‘짝’에서도 참인 것으로 입증됐다. ‘수애 닮은 꼴’ ‘황정음+황우슬혜’ ‘이하늬 닮은 꼴’ 등으로 불리며 예쁜 외모로 주목받았던 여자 출연자들은 스스로 선택을 포기한 1명을 빼고 모두 짝을 정하는 데 성공했다. 남자 출연자 가운데 서울대 수석졸업생은 중간 선택 과정에서 여자 출연자 100%의 지지를 받았고, 외고와 명문대를 졸업한 삼성맨은 4명의 여자와 데이트를 즐겨 ‘의자왕’으로 불렸다.

남자가 여자의 외모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유는 미모가 생식능력을 반영한다는 심층심리 때문이다. 반면 여자는 자신과 아이를 지속적으로 먹여 살릴 자원, 즉 ‘스펙’이 뛰어난 남자를 선호한다. 남자에게 잘생긴 외모는 짝을 정하기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남자를 ‘밥줄’로 보는 여자들은 잘생긴 남자들을 보면 다른 여자들과 이 밥줄을 공유하게 될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 남자들은 정신적 부정이 더 큰 죄

짝에서 남녀간 질투를 유발하는 지점은 달랐다. 수의사인 남자 출연자는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폭음을 하며 번민했다. 문제의 데이트는 육체적 접촉이 없는 건전한 수위였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가 남의 아이를 갖는 일을 경계하기 때문에 ‘성적 신뢰도’에 민감하다.

외고와 명문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다니는 ‘스펙 좋은’ 남자에게 여자 출연자의 절반인 4명이 호감을 보였다.
외고와 명문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다니는 ‘스펙 좋은’ 남자에게 여자 출연자의 절반인 4명이 호감을 보였다.
반면 여자 출연자들은 남자의 변심, 즉 정신적 부정에 민감했다. 여자는 내 남자의 자원이 다른 여자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을 감시해야 하는 처지여서 자신에 대한 ‘지속적 헌신’ 여부를 꼼꼼히 챙긴다. 구두회사 외아들은 애정촌 입소 첫날부터 성실하게 한 여자에게만 매달린 끝에 커플이 돼 지금껏 사귀고 있다.

○ ‘남자 능력, 여자 외모’ 공식 깨지기도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공식을 깨뜨린 경우도 있다. 대표 사례가 연상녀-연하남 커플. 디자이너인 남자 출연자는 4세 연상의 대학원생 여자를 위해 직접 닭을 잡아 삼계탕을 끓이는 성실함을 보인 끝에 짝 고르기에 성공했다. 이는 진화심리학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남자는 나이가 어리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여전히 매력적인 상대가 될 수 있다. 또 나이가 많은 여자라도 동안이면 생식능력이 떨어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자의 호감을 자극할 수 있다.

대기업 입사가 예정된 명문대 재학생 여자는 고졸의 자동차 정비사 남자를 선택했다.
대기업 입사가 예정된 명문대 재학생 여자는 고졸의 자동차 정비사 남자를 선택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여성이 고졸의 자동차 정비사를 고른 사례를 보고 ‘남자=능력’이라는 공식이 틀린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가진 자원의 ‘절대량’보다 ‘지속적 공급 여부’를 높게 평가한다. 한 여자 출연자가 “그 남자의 마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감동을 표현한 것도 남자의 능력 못지않게 헌신의 덕목이 중요함을 입증한다.

○ 나쁜 남자가 유리하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일부러 외면하는 ‘나쁜 남자’ 전략도 먹힐 때가 있다. 출중한 외모의 모델 출신 여성을 좋아하는 듯했던 남자 출연자가 도중에 그녀를 바람맞히는 장면이 있었다. 그녀는 “약 오른다”고 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커플이 됐다. 이런 전략은 자신의 짝짓기 가치(mate value)를 실제보다 높게 보이게 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자들은 많은 여자들에 둘러싸인 남자에게 더 호감을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는 대체로 ‘가진 것’이 많을 가능성이 높은 연상남을 선호하지만 연하남의 지속적 헌신에서 비교우위를 찾기도 한다. SBS TV 화면 촬영
여자는 대체로 ‘가진 것’이 많을 가능성이 높은 연상남을 선호하지만 연하남의 지속적 헌신에서 비교우위를 찾기도 한다. SBS TV 화면 촬영
이 같은 진화심리학의 설명은 물론 ‘일반적’이지 ‘절대적’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이뤄지는 짝 고르기와 정하기는 타협과 절충의 산물이다. 시대에 따라서도 변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매년 미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 결과 2001년 남자들은 여자의 외모 다음으로 가정환경을 중시했지만 10년 후인 지난해에는 가정환경보다 여자의 경제력과 직업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인간이 동물적 본능에 기대고 있지만 단지 동물만은 아닌 이유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진화심리학::

인간의 심리를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학문으로 20세기 후반에 생겨났다. 인류가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유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정한 패턴의 행동에 근거해 인간의 심리를 설명한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절대적 과제를 잘 해결했던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후대를 남겼고, 후손들도 조상들의 생존에 유리했던 특정한 심리와 행동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생존과 번식이 키워드이기 때문에 남녀 간 짝짓기를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 결과가 많다.

참고자료: 진화심리학의 거두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 버스 교수의 제자인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쓴 ‘오래된 연장통’, 앨런 밀러, 가나자와 사토시 공저의 진화심리학 입문서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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