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새 과학 교과서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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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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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원자는 원자핵에 1개의 양성자가 있고, 그 주위에 1개의 전자가 있다. (중략)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므로 원자번호=양성자수=전자수.”(기존 교과서)

“우주가 탄생한 후 38만 년이 지난 뒤 우주의 온도가 약 3000K(섭씨 2726.85도)까지 낮아지면서 (중략) 양성자 1개로 이뤄진 원자핵과 전자 1개가 결합해 수소 원자가 형성되고 (중략) 음전하를 띤 전자가 양전하의 원자핵과 결합해 중성 상태의 입자들이 우주에 가득 차게 되었다.”(2011년 개편 과학교과서)

올해 고등학교에서 사용될 새 ‘과학’ 과목 교과서가 공개됐다. 새 교과서는 첫 단원이 우주의 ‘빅뱅’일 만큼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원자(atom)에 대한 설명이 ‘빅뱅의 증거’를 설명하는 단원에서 등장하는 등 기존 과학교과 간 장벽도 과감히 없앴다. 올해부터 전국 고1 학생 대부분은 ‘2009 개정 교육과정’ 시행에 따라 새 교과서로 공부하게 된다.

○ 우주 빅뱅부터 인간 등장까지 스토리에 물·화·생·지 융합

교과서 전반부는 우주 생성에서 생물 진화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다룬다. 경기 오남고 김영준 교사는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뒤 입자가 만들어지고, 태양계와 지구가 생기며 그 지구에서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거쳐 오늘날 인간이 살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시간 흐름의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것”으로 분석했다.

새 교과서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이라는 기존 칸막이를 허물었다. ‘행성의 대기’를 설명하면서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 CO₂ 구조 같은 물리·화학 개념을 곁들였다. 화학 시간에 배웠던 ‘원소주기율표’는 지구의 내부구조(지각·맨틀·외핵·내핵)를 설명하는 가운데 등장한다. 지난해까지 사용된 같은 과목 교과서가 ‘에너지’ ‘물질’ ‘생명’ ‘지구’로 단원을 나눠 물·화·생·지를 엄격히 구분했던 것과 대비된다.

김희준 과학교육과정개발사업단장(서울대 화학과 교수)은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과학 이슈는 물·화·생·지의 구분을 두지 않고 종합적으로 봐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며 “학생들이 왜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이 같은 현실을 교과서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 최신 과학기술 이야기가 교과서 절반 차지

디지털카메라나 프리온(광우병 유발 물질) 같은 최신 과학이슈로 교과서 후반부를 채운 점도 눈에 띈다. 기존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던 하드디스크, 나노물질, 고분자, 디스플레이, 면역, 연료전지, 조류인플루엔자, 기후변화 등의 주제들이 교과서의 절반을 차지해 과학 수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새 과학교과서 ‘개혁’을 주도한 이덕환 융합형과학모델교과서개발사업단장(서강대 화학과 교수)은 “지난 50년간 과학기술에 큰 발전이 있었지만 기존 교과서에 나오는 물리나 화학은 19세기에 멈췄었다”며 “새 교과서는 문·이과 진로와 상관없이 현대과학 성과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 과학교양 갖춘 시민 양성에 초점

새 교과서는 과학교육의 패러다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기존 교육은 어떤 맥락에서, 왜 배워야 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낱낱의 개념 전달이라는 ‘나무’에만 치중했다는 평가다. 이 단장은 “지금까지 과학 수업은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라며 “앞으로는 우주 자연 생명 현대문명 등 ‘숲’ 전체를 먼저 보여주는 교육으로 방향을 틀어 과학 교양을 갖춘 합리적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도 이번 과학교육 개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단장은 “지난해 9월 일본화학회 월간지가 한국의 과학교과서 개혁을 자세히 소개했고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노요리 료지 이사장은 ‘일본도 한국처럼 과학교과서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새 과학교과서들은 이달 4일 인정심사를 최종통과하고 정식 교과서로서 자격을 갖췄다. 각 고교는 이달 14일까지 총 6개 출판사가 제작한 7종 교과서 중 하나를 선택하고 3월부터 수업에 들어간다.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sypy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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