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기초’ 분류학, 중요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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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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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물자원관 김기경 연구원이 올해 8월 캄보디아 현지에서 채집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분류학 분야 일자리가 줄면서 분류학 전공자도 급격히 감소했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국립생물자원관 김기경 연구원이 올해 8월 캄보디아 현지에서 채집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분류학 분야 일자리가 줄면서 분류학 전공자도 급격히 감소했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국립생물자원관 김민경(가명·30) 연구원의 하루는 견학 온 초등학생들에게 한국의 자생식물을 알려주는 일로 시작된다. 오후에는 다른 방문객에게 수장고를 안내하는 일정이 잡혀있다. 식물 표본을 정리해 논문 쓸 시간도 부족하지만 김 연구원은 전공인 분류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동기 대부분은 취업이 어려워 꿈을 접었다.

○ 분류학 전공자 배출 기반 줄어

김 연구원 같은 국내 분류학 전공자의 가장 큰 고민은 졸업 뒤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분류학은 생물이 어디에 속하는지 ‘족보’를 파악하는 학문이다. 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유전공학에 비해 기초과학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2007년 국립생물자원관이 생기기 전에는 분류학자가 연구할 수 있는 곳은 대학이 유일했다.

하지만 생물자원관이 생긴 뒤에도 분류학자의 자리는 점점 줄었다. 대학에 자리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신여대는 올해 초 식물분류학과 동물분류학 2개로 진행되던 수업을 하나로 합쳤다. 성균관대는 2007년 동물분류학을 전공한 교수가 퇴임한 뒤 동물분류학 연구실을 없앴고 강원대는 2002년 식물분류학 교수가 2명에서 1명으로 줄었는데도 충원을 하지 않았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종욱 교수(식물계통분류학)는 “대학에서 분류학이 축소되는 현상은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수나 논문 영향력 지수(IF) 같은 성과를 기준으로 교수를 임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분류학은 단기간에 논문을 여러 편 내거나 다른 논문에 인용되기 쉽지 않다. 채집과 분석에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종이 다르면 비슷한 생물이라도 타 논문에 인용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분류학 분야의 일자리와 대학수업 감소는 전공자의 감소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박 교수는 “지방대로 갈수록 대학원의 분류학 연구실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연구실이 있어도 지원자는 생물학과 졸업자의 20%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분류학자 공급 줄었지만 미래 수요는 늘 듯


이처럼 수년간 국내 분류학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분류학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최근 들어 해당 분야를 전공한 인재를 찾는 기관이 늘기 시작했다. 인력의 수요 공급 불일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고려대 생명과학대 배연재 교수(동물분류생태학)는 “2012년에는 충남 서천군에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그 뒤에도 경북 상주와 전남 목포에 생물자원관이 건립될 예정”이라며 “최근 정부에서 분류학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 한국동물분류학회장(서울대 생명과학부)도 “분류학자가 모자라다 보니 연구비를 지원받는 연구 사업이 생겨도 이를 수행할 인력이 없어 취소된다”며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류학은 생물학 전반에서 유용하기 때문에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전략평가연구실 이현우 연구위원(식물분류학)도 “최근에는 생명 관련 정책을 수립하거나 의약품을 개발할 때 분류학 지식이 많이 필요하다”며 “분류학 자체가 침체됐다고 하기엔 수요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y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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