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빛내리 교수 “날 보고 용기얻었다는 여학생 e메일 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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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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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회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 대상 받은 김빛내리 서울대교수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고등학교 1학년 때 언니가 사다 준 과학사 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22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의 과학이 인상적이었죠. 그래서 철들고 난 뒤엔 꿈이 항상 과학자였어요. 돌이켜 보면 저한테 정말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한 것 같네요.”

9일 ‘제5회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 대상’을 받은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41·사진)는 “배우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엔 과학자가 천직”이라고 말했다. 2001년 서울대 생명과학인력양성사업단 계약교수로 부임하며 본격적으로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해로 10년째. 그는 ‘10년이 1년’이라는 기초과학계의 속설과 달리 데뷔하자마자 주목받았다. 2002년 유럽분자생물학기구(EMBO)에서 발행하는 ‘EMBO 저널’에 유전자의 기능을 조절하는 ‘마이크로RNA’라는 물질이 세포 안에서 만들어지는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한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열린 학회에서 이 내용을 가장 먼저 발표했죠. 그런데 소위 ‘히트’를 친 거예요. 당시엔 마이크로RNA의 종류와 기능, 생성 과정이 ‘3대 궁금증’이었는데, 제가 마지막 궁금증을 푼 셈이었거든요. 발표가 끝나자 연구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용이 너무 흥미롭다며 꼬치꼬치 물어보더군요.”

하지만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당시 김 교수의 논문을 일주일 만에 돌려보냈다. 마이크로RNA의 생성 과정을 뒷받침할 증거가 다소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김 교수에겐 이 일이 연구 의지를 더욱 불태우는 계기가 됐다. 그는 마이크로RNA의 생성에 관여하는 효소 ‘드로샤(drosha)’를 세계 최초로 발견해 이듬해인 2003년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름처럼 그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빛나기’ 시작한 때도 이즈음이었다. 2004년부터는 과학계의 각종 수상자 명단에 ‘김빛내리’라는 이름 넉 자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해 받은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마크로젠 신진과학자상’은 김 교수의 ‘1호’ 상이다. 이번에 받은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은 총상금이 8000만 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과학자상이다.

그는 “나의 학창시절엔 가까운 곳에 보고 따라할 여성 과학자가 거의 없었다”며 “나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는 여학생들의 e메일을 받으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서울대 미생물학과에 입학했을 때 25명 가운데 6명이 여학생이었다. 당시로서는 여학생 비율이 높은 축에 속했다. 그는 “요즘엔 여학생이 60% 정도로 더 많은 데다 우수한 논문의 제1 저자에도 여성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면서 “직접 겪어 보니 적극적이고 야심 많고 포기하지 않는 게 여성 연구자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분야마다 ‘온도차’가 크지만 생명과학 연구에서는 여성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더 많은 편”이라면서 “나도 학생 때는 불투명한 앞날이 불안해 몇 번이나 과학자의 길을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길이 열린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한국에 첫 노벨 과학상을 안겨주지 않겠냐는 기대에 대해 “마이크로RNA가 노벨 과학상을 받는다면 이를 처음 발견한 빅터 앰브로스 미국 매사추세츠의대 교수와 siRNA를 처음 발견한 데이비드 볼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최초 발견자에게 공을 돌렸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은…::

열정적 여성과학자 육성 목적, 순수학문 외 응용분야도 수여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은 여성 과학자의 활약상을 알리고 연구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과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2005년 함께 만들었고 2006년 제1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인 고(故) 서성환 회장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는 1932년부터 독자적인 기술로 정제한 동백기름을 만들고 동백꽃잎을 이용한 연료와 매염제(媒染劑)까지 생산한 실험정신의 소유자다. 아모레퍼시픽은 윤 여사의 열정적인 활동을 기려 여성 과학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이 상을 제정했으며 순수학문 분야뿐 아니라 응용분야 여성 연구자에게 매년 상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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