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든 행동, 암호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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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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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문-홍채 인식 기술서 ‘행동 인식’ 기술 본격 개발
“범죄자 행동방식 모아 프로파일링 수사 활용 가능”


국제 테러리스트 A 씨가 인천공항에 들어온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A 씨는 첨단 얼굴성형으로 마치 영화 ‘페이스오프’처럼 거의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지문도 지워버렸다. 그래도 정보기관엔 묘책이 있다. 외양은 바뀌었지만 독특한 행동 방식으로 A 씨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수백 명이 내리고 입국심사대로 걸어올 때 공항 카메라는 A 씨로 추정되는 인물을 가려냈다. 걸음걸이, 제스처 등의 행동 정보로 A 씨를 찾아낸 것이다. 수사원은 바로 A 씨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의 행동과 몸짓 모두 ‘암호’

인간의 생체 정보를 암호로 이용하는 ‘바이오메트릭스(Biometrics)’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문 홍채 귀 등의 ‘가만히 있는’ 신체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과 손가락 움직임, 서명하기, 걷는 모습, 목소리 변화 등 ‘움직이는’ 행동 정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지문 및 홍채 인식은 널리 쓰이고 있지만 행동 인식 기술은 이제 첫발을 내딛는 단계다.

행동 암호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쓰였다. 보안소프트웨어 기업인 비원플러스 김형민 대표는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이 주고받는 신호를 구분하기 위해 이 방법을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전쟁 이후에는 미국표준협회를 중심으로 학문적 연구를 해왔다”고 말했다. 행동 암호는 오랫동안 연구단계에만 머물렀다. 그러나 미국에서 9·11테러 이후 보안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고, 노트북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정보기기 보급이 늘어나며 정보보호 기술이 더 중요해진 것도 연구에 불을 지폈다.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학계 및 산업계에서 행동 암호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지는 10년 정도 됐다”며 “최근에는 행동 암호 논문이 매년 50∼100개나 발표되는 등 인기 주제”라고 말했다.

○터치스크린 만지는 방식도 암호

행동 암호 중 가장 먼저 현실로 등장할 것들은 정보기기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키보드를 치는 속도와 방법, 터치스크린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방법 등의 행동 암호가 현재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김 대표는 “자판에 ‘1379’라는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사람마다 박자가 달라 이러한 행동 패턴을 암호로 쓸 수 있다”며 “터치스크린 또는 터치패드 등에 서명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컴퓨터의 자판을 치거나 스마트폰의 액정화면에 사인을 하는 행동을 5회 정도 하면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의 패턴을 인식해 암호로 저장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암호를 추가로 입력할 때마다 행동 패턴을 분석해 암호를 더 정교하게 만든다.

‘나를 남으로 인식’하거나 ‘남을 나로 오인’하는 오류는 최근 센서의 발달과 소프트웨어 개발 등을 통해 거의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자판 입력 암호방식 등은 오차율이 5∼10%이며 1∼2% 수준까지 낮춘 사례도 보고됐다. 현재 세계적으로 5개 기업이 상용 제품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기업용 스마트폰의 보안 도구로 개발해 시험 중이다. 선진국의 정보기관은 이미 서명하는 방식을 암호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행동도 얼마든지 암호로 만들 수 있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 걸음걸이다. 영상 센서와 동작 인식 소프트웨어를 통해 걸음걸이로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스마트폰 등에 달린 중력센서를 이용해 칵테일을 섞을 때처럼 손목 흔들기 방식을 암호로 바꾸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조 교수는 “앞으로 공항, 행정관청 등 보안이 중요한 곳에서 행동 암호를 활용해 범죄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범죄자의 행동 방식을 모아 프로파일링 수사에 활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교육과 오락 등의 분야에도 쓸 수 있다. 피아노, 드럼 등의 악기와 스포츠 자세 훈련 시 대가의 행동 패턴과 자신의 행동을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다른지 알 수 있다.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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