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우리 대학 스타/한국기술교육대 기계정보공학부 유지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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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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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파키스탄 접경지역인 아프가니스탄 와나트 전투지역. M4 소총을 든 미군 45명이 탈레반 반군 200여 명에게 포위된 채 공격을 당하고 있다. 이 위급한 순간에 소총은 발사되지도 않는다. 미군들은 반군의 총에 맞아 한두 명씩 쓰러져간다. 의무병은 있지만 부상병을 치료할 마땅한 장비가 없어 속수무책이다. 교전 30분 뒤 아파치헬기와 무인 폭격기가 지원에 나서면서 미군들은 비로소 한숨을 돌리지만 그 사이에 9명이 숨졌다. 미군으로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전 이래 단일전투 최대의 인명피해였다.

만약 이 같은 전투가 2010년 7월쯤 일어났다면? 의무병은 배낭에서 대륙간 수술 로봇을 꺼내 부상병의 상처부위에 얇은 철사 굵기의 로봇을 놓는다. 장기 봉합 수술에 뛰어난 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가 컴퓨터로 로봇을 원격 조종하면서 상처 부위를 봉합한다. 이 수술엔 한국기술교육대(한기대) 기계정보공학부 유지환 교수(37)도 참여하고 있다. 사망할 뻔한 부상병은 거뜬히 살아나고 미군 피해는 극소수에 그친다.

이러한 상상은 꿈이 아니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있는 한기대. 유 교수는 최근 한기대 실험실에서 미국 워싱턴주립대, 미국 스탠퍼드리서치인스티튜트(SRI)사, 일본 도쿄대 공대, 독일 뮌헨공대와 공동 수술로봇 원격 조종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국내에서 대륙간 수술 로봇을 원격 조종한 것은 이번이 처음. 유 교수는 원격제어 분야에선 국내 독보적인 존재다.

이번 실험은 의사들이 실제 복강경 수술 수련과정의 동작을 재연하기 위해 수술기계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옮겨보는 것이다. 유 교수와 연구진은 인터넷과 주문형비디오(VOD)를 통해 전송된 실험 대상을 보면서 실험실의 마스터 로봇을 양손으로 잡고 움직인다. 로봇은 복강경 수술 전용으로 미국 워싱턴주립대를 비롯해 각각의 실험실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 이에 따라 앞으로는 의료기술이 떨어지는 나라의 환자가 병실에 누운 채 외국 의료진의 수술로봇 원격 조종을 통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인하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유 교수는 KAIST에서 기계공학과 석·박사를 마친 뒤 2005년부터 한기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워싱턴주립대 전자공학과 박사후연구원, 독일항공우주연구소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2000년엔 ‘원격조종로봇 안정화 논문’으로 ‘유럽의 NASA’라 불리는 독일 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초청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기대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시회에서 차량에 타지 않고도 탄 것처럼 운전할 수 있는 무인원격자동차를 선보였다. 이 역시 생명을 잃을 염려 없이 위험지역을 탐색하거나 군사 목적으로 지형을 탐색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23일 한기대 유 교수 실험실. 러시아 등에서 온 대학원생과 학부생들이 유 교수의 강의를 듣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독일에서 이 기술을 배우러 온 조르디 아티가스 씨(32)는 “유 교수님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배우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원격 제어 장치는 향후 우주공간을 떠도는 인공위성의 조종까지 가능할 것”이라며 “인류의 행복을 위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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