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좋은 의사들이 왔다”…환자 몰려 경찰 동원되기도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펼쳐진 분당서울대병원의 의료봉사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우즈베키스탄 환자들. 이들은 한국 의료진의 진료를 받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렸다. 타슈켄트=김현지 기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펼쳐진 분당서울대병원의 의료봉사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우즈베키스탄 환자들. 이들은 한국 의료진의 진료를 받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렸다. 타슈켄트=김현지 기자
분당서울대병원 우즈베크 의료봉사 동행 취재
6일간 120명에 무료수술…기생충 진단시스템도 설치

16일 오전 11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립응급의료센터 외래진료실 문이 열리자마자 아이와 노인, 젊은이들이 밀려들어 왔다. 한국 분당서울대병원 의료봉사팀의 외래진료 첫날이었다. 너무 많은 환자가 몰리자 의료진이 잠시 자리를 피하고 경찰이 동원됐다. 상황은 20여 분 만에 정리되고 환자들은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진료만으로 나흘 후까지 수술 일정이 꽉 짜였다.

성숙환 흉부외과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분당서울대병원 의료봉사팀은 KT&G,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이곳에서 5년째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팀이 올 때마다 환자는 늘어났다. 봉사팀 인원도 덩달아 늘었다. 올해는 흉부외과 성형외과 안과 마취과에서 40여 명의 의료진이 참가했다. 16∼22일 의료봉사 기간에 하루 20여 명씩 총 120명의 환자가 수술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 환자 중에는 구순구개열(언청이), 오목가슴(가슴뼈가 함몰된 기형), 소이증(귀 모양 기형)을 앓고 있는 사람이 특히 많았다. 이번 수술이 아니라면 평생 구순구개열이라는 짐을 안고 살아야 했을 12개월 된 아기도 있었다. 젊은 어머니는 “한국에서 좋은 의사들이 온다고 해서 5시간이나 걸려 왔다”며 “수술이 잘된 것 같아 정말 기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의료진은 절반 이상이 물갈이 설사병에 시달리면서도 출국하는 날 오전까지 메스를 놓지 않았다.

폐암 수술을 받으려고 20여 일이나 입원해 있던 한 환자(63)가 결국 수술을 받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35년간 내과의사로 일한 그는 오랫동안 한국 의료진이 오기만 기다려왔다. 그만큼 한국 의료진의 경험과 숙련도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에서 검사 결과는 정밀하지 못했고 환자의 심장은 수술을 견디기에 너무 약했다. 성 교수는 “양전자단층촬영(PET) 장비는 아예 없고 컴퓨터단층촬영(CT)은 해상도가 낮아 암의 크기와 위치를 제대로 알기 힘들다”며 “심장도 나빠 수술 후 환자가 살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수팀은 환자에게 “수술 대신 항암제 치료를 하기로 했다”고 얘기해줬다. 환자는 크게 실망했지만 한국 의료진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싶지만 경제사정이 안 된다”며 “내일 퇴원해 항암 치료를 받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의료기술은 맹장염 등 간단한 수술을 하는 수준이다. 위 십이지장 췌장 분야의 일부 암 수술과 심장수술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복잡한 수술은 하기 힘들다. 장비가 낡아 X선 기기의 80%는 10년째 사용할 정도다.

봉사팀은 수술 이외에도 우즈베키스탄 국립응급의료센터에 단방조충(기생충의 일종) 감염 여부를 조기 진단하는 시스템도 설치해줬다. 단방조충은 양의 간이나 폐에 물주머니(포낭)를 만들며 번식하는 기생충인데 사람도 걸릴 수 있다. 연간 6000명의 환자가 생길 정도로 흔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구충사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홍성태 기생충학교실 교수는 “이곳의 의료수준은 1960년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며 “우즈베키스탄 의료진에게 혈청으로 기생충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간 교역이 늘어나면서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의료서비스 지원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우즈베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정부는 1000만 달러를 지원해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합자로 심장외과 전문병원인 ‘바히도브 외과병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병원은 2, 3년 내 완공된다. 김영국 영사는 “우즈베키스탄은 사망 원인의 50% 이상이 심장질환에 의한 것”이라며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지원 요청으로 병원을 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간 차원의 의료 교류도 활발하다. 2007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1년간 연수를 했던 우즈베키스탄 의사 스크루존 이사무하메도브 씨(35)는 “한국에서 배운 기술로 국립응급의료센터 내 심장질환 전문 클리닉을 만들고 싶다”며 “이곳 사람들이 한국 의료진의 도움을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타슈켄트=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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