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색시 의사의 불임 이야기

  • 입력 2008년 3월 24일 09시 47분


의료의 길에 들어서 정신없이 달리고 나니 어느덧 벌써 14년이란 시간이 흘렀군요. 그 시간동안 희망과 푸른 꿈에 충만했던 한 여대생도 어느덧 이렇게 한 분야의 전문의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KTX 타듯 쏜살같이 달려온 시간을 뒤로 두고 얼마 전부터 결혼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느라, 아침에 모자란 잠을 추스르고 병원으로 뛰쳐나가던 제 삶의 하루가 이전보다도 더욱 바빠진 것 같습니다. 눈뜨기 싫어하는 남편 깨워 씻기기, 아침 차려주기, 출근길 넥타이 매주기... 우리 어머니들이라면 누구나 해 오셨던 그 일에 드디어 저도 동참하게 된 것 같군요.

결혼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전후로 친구들이 많이 축하해주는 와중에 이상하게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게 있더군요.

“윤희야, 제일 중요한 혼수는 챙겨갔니? “뭐?” “야, 내숭 떨지 말고!!!”

혼전 순결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혼전 임신이 혼수라고 환영받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웃기만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비단 친구들만이 아닙니다.. 저희 어머니도, 시어머니도, 그리고 다른 어른들도 늦게 결혼하는 제가 모두들 마음에 걸리시는지 결혼하면 빨리 애부터 생겨야 하는데, 하고 걱정하시더군요.

불임이 남의 일이 아닌 세상이 된 것도 한참이나 지난 것 같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면 결혼이 늦어지는건 당연한 일입니다. 결혼 후, 부부의 맞벌이와 바쁜 삶 속에서 부부관계가 비중을 잃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육아비 문제로 임신이나 출산을 주저하게 되는 것도 이유로 거론될 수 있습니다. 결혼 연령의 고령화와 육아에 대한 부담으로 임신 기피 등의 이유로 출산율 저하 및 불임인구의 증가라는 문제는 이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회적 이슈 입니다. 단지 개인의 문제라고 덮을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 남편의 선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부부는 유명한 치과의사 커플인데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두 사람 모두 미국에 가 있답니다. 정말로 남부럽지 않은 잉꼬부부일 뿐 아니라 사회적 성취도 누구 못지않은 사람들이지만 임신이 잘 안 된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워낙 자신들의 일을 사랑하던 부부였던지라 결혼 초기엔 피임을 했었고 나중에 피임을 중단한 이후엔 서로 일이 그 문제에 대해 소홀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막상 아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생각처럼 잘 안되더라는 것이죠. 이 이유로 정말 좋았던 두 사람의 부부생활이 믿어지지 못할 만큼 황폐화 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몇 년을 병원을 다닌 끝에 간신히 임신을 하게 되었지만 그 때까지 두 사람의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선배는 지금도 임신을 늦췄던 시간들을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임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령여성의 임신은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령에 따라 난자가 수적으로, 질적으로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나이가 증가하면 난자가 질이 나빠지므로 이런 과정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특히 임신률의 감소는 여성의 나이가 35세가 넘게 되면 더 가파른 경사로 감소하게 됩니다. 여성의 나이가 40세를 넘으면 가임력이 20세 여성의 1/4에도 못 미치게 되고 유산율도 훨씬 높아져서 임신은 더욱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설령 임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염색체 이상이나 태아기형의 확률 역시 젊은 여성보다 훨씬 높아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5세 이상의 여성의 임신의 경우 임신 16주에서 18주 사이에 염색체 검사를 일반적으로 추천하고 있습니다. 이 연령이 넘어가면 다운증후군 등의 염색체 이상이 생길 확률이 젊은 여성에 비해 훨씬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경우는 가임력이 35세에 가장 정점에 다다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정자의 질이 감소하나 여성처럼 심한 곡선을 그리며 나빠지진 않습니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은 여성 불임의 관점에서는 꼭 재고되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임신에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불임 부부들은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사실을 모른체 불임클리닉에 너무 늦게 찾아온다는게 문제입니다. 자연임신 뿐만이 아니라 불임치료를 했을 경우에도 여성의 연령이 높을수록 난소반응이 감소되기에 임신성공률은 감소하게 되고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는다 하더라도 성공률은 떨어지게 됩니다. 불임의 정의는 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불구하고 1년 이상 아기가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기간을 넘기면 불임검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일찍 불임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훨씬 쉽게 임신이 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몸 고생, 마음 고생, 시간 고생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통계보고에 의하면 국내에도 2007년 현재 8만 7천 쌍 이상의 부부가 불임으로 인한 고민을 안고 있고 매년 5만 건 이상의 보조 생식술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바쁘니까, 또는 다른 이유로 불러올 수 있는 불임의 위험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소중한 선물을 거두기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부탁합니다.

고된 의사의 길을 걷는 동안 힘든 날도 많았지만, 그 와중에도 제 자신을 지탱해 줄 수 있었던 것은 고된 노력 끝에 임신이 되어 행복해하는 불임 부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데서 얻어지는 행복감이란 부부에게 대단한 것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조금만 더 일직 병원을 찾아서 이런 불임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건강한 2세를 얻게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장스여성병원(www.jangshospital.co.kr) 불임클리닉 실장 의학박사/전문의 구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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