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알아도 ‘병’ 자가진단하는 환자들

  • 입력 2006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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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한테 약을 바꾸라고 했더니 글쎄 ‘(그 제약회사에서) 리베이트를 받았느냐’고 묻지 뭐예요.”

최근 만난 한 내과의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 의사는 요즘 ‘너무 많이 아는 환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10년간 고혈압을 앓아 온 환자에게 지금 먹고 있는 약을 계속해서 복용하면 심장과 위장 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는 것. 그런데 환자는 현재 먹는 약이 이런저런 점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당하다며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 의사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을 던진 뒤 발길을 끊었다.

또 다른 정형외과 의사는 “과거에는 환자들이 ‘어깨가 아프다’며 왔지만 요즘은 ‘회전근개 파열 아니냐’고 묻는다”고 전한다. 회전근개는 어깨근육에 있는 힘줄로 날씨가 쌀쌀할 때 준비운동 없이 격한 운동을 하면 쉽게 파열된다. 예전에는 의사들 사이에서나 오가던 이런 전문 의학용어들이 이제 일반인도 사용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최근 한 달간 검색된 인기 의학용어 30개를 뽑은 결과 ‘원발성 왜소증’ ‘베체트병’ ‘주기성 사지운동증’ 등 전문용어가 대거 올라와 있었다.

실제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정보가 많아지면서 자신의 증상에 대해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심지어 처방까지 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소비자가 똑똑해지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감지된다. 대웅제약은 비타민B 음료 ‘쾌슬’을, 동국제약은 여성 호르몬제인 ‘훼라민Q’를 내놓으면서 대형 병원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해 효과를 입증했다. 원래는 일반의약품이라 임상실험을 할 필요가 없었던 약들이다. 요즘 약품 설명서들이 책자처럼 두껍고 알기 쉽게 나오는 것도 똑똑한 소비자들의 힘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의사들의 설명을 믿지 않고 자신의 지식을 믿는 환자들도 나오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의학정보를 얻는 인터넷에는 실제로 잘못된 정보도 많은데 말이다.

최근 한 포털 사이트에 ‘자궁근종의 위험성’을 묻는 질문에 ‘자궁근종은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으며 피마자기름 찜질요법이 효과가 있다’는 답이 올라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물어 보니 자궁근종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무엇이든 많이 알면 알수록 좋다. 그러나 병과 약은 제각기 다른 ‘사람’을 다루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무장도 중요하지만 ‘살아있는 지식의 보고’인 전문가의 조언이 더 중요하다.

하임숙 교육생활부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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