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연구인맥 지도’ 만든다… 47개 연구기관 383명 분석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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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연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연구자와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연구자 네트워크 개념도. 중심인물에 가까울수록 공동연구가 활발한 연구자이며 바깥으로 갈수록 관계가 적은 연구자들이다. 자료 제공 한국과학재단
특정 연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연구자와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연구자 네트워크 개념도. 중심인물에 가까울수록 공동연구가 활발한 연구자이며 바깥으로 갈수록 관계가 적은 연구자들이다. 자료 제공 한국과학재단
《“아 그거요? 김 교수에게 물어보세요.” 김 모 교수는 관련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선 숨은 ‘정보통’으로 통한다. 관련분야의 최신 동향부터 연구계 내의 시시콜콜한 속사정까지 모르는 게 거의 없을 정도. 동료 연구자들의 논문에서 그의 이름이 자주 눈에 띄는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이 어느 수준인지 어림할 수 있다. 최근 김 교수 같은 연구계 내의 숨은 실력자와 주변 관계를 분석하는 이색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일종의 연구계 ‘인맥 연구’ 프로젝트인 셈.》

○ 기여도 높을수록 인맥 촘촘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최인준 교수팀은 한국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1999∼2005년 전자전기 분야의 특정연구 138개 과제를 수행한 47개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 383명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동일 연구과제나 논문을 수행했거나 어떤 기관 소속인지를 기준으로 연구자 간의 관계를 살폈다.

분석 결과는 눈으로 보기 쉽게 그림으로 나타냈다. 서로 관계가 깊은 사람은 가까이, 어떤 연구나 과제 수행에서 ‘중심인물’일수록 가운데에 배치했다.

주변 인물과 선으로 촘촘히 연결된 인물은 보통 조직 내 중요 인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수가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히 많고 자신과 비슷한 중심인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주변 인물들은 중심인물을 중심에 두고 동심원 형태로 배치된다.

반면 연구 기여도가 낮은 연구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선이 적거나 아예 동떨어져 나타난다. 연구자 간 거리가 멀면 멀수록 관계는 소원하다는 뜻.

최 교수는 “이 분석 기법을 활용하면 공동 연구 및 논문 참여 여부, 소속 기관, 특허 정보를 토대로 연구 기여도, 주도권, 학연 등 다양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 중심인물=연구전반 관리자

분석 결과는 연구자들 간의 실제 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김성준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 연구과제와 소속기관 등을 기준으로 연구자 관계를 분석한 결과 김 교수는 1990∼2005년 당시 서울대 내에서 임정민 교수, 김병기 교수, 박태현 교수, 오승재 박사 등 8명의 생체전자 연구자들과 관계를 맺은 것으로 나왔다.

특히 김 교수는 이들 연구자들과 모두 개별적인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가 그룹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이 시기 김 교수는 서울대에 설립된 ‘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연구센터장’을 맡아 연구 전반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었다.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한 인맥 찾기가 왜 연구자 인맥 분석에 동원된 것일까. 실제로 인맥 분석은 단순한 호기심 충족 이상의 사회 경제적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 테러사건 주범 색출에 활용

지난 ‘9·11’ 테러범 수사 과정에서 인맥 연구는 그 유용성을 충분히 입증했다.

당시 미국의 사회망(Social Networks) 분석가들은 테러범 간에 오간 전화와 팩스 등 통신 횟수와 방향 등을 토대로 점 조직으로 이뤄진 주범과 공범의 관계를 찾아냈다.

실제 국내 연구자 네트워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알지 못했던 관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해당 분야의 중심인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기여도가 낮은 연구자, 겉보기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연구자들 간의 밀착관계 등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실들이 인맥 분석 과정에서 나타났다.

최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연구자들 사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을 파악하고 파급효과가 큰 분야를 발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연구자 인맥 분석은 긍정적인 모델”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관계자도 “학연 지연 중심의 폐단을 막고 연구개발비와 과학기술 정보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최근 지식정보망의 기능도 이처럼 점점 똑똑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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