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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월 5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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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선=먼저 DNA 구조 발견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DNA의 발견을 통해 지난 50년 동안 생명과학 혁명이 일어났고, 올해에는 마침내 인간의 생명 설계도인 게놈 지도가 완성된다. 결국 생명과학은 DNA를 통해 정보과학이 됐다.
△유명희=게놈 지도를 생명의 설계도라고 표현했지만, 아직 건물 설계도처럼 자세하지 않고 대충 위치만 잡힌 것이다. 앞으로 생명과학은 빈 부분을 채우는 작업을 할 것이다. 각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것이 그것이다. 앞으로 5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최재천=DNA를 발견하면서 생명과학이 유전자 중심으로 변했다. 흔히 생물의 목적은 ‘종족 보전’이라고 하는데 어떤 동물도 종족을 위해 섹스를 하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고, 자신의 유전자를 위해 사는 것이다.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해 섹스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DNA의 발견은 인류 사고의 일대 혁명을 불러왔다.
△서=자크 모노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에서 진화가 목적 없이 우연한 변화를 통해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종교는 인간을 항상 세계의 중심에 놓았다. 그러나 과학은 사람이 길거리의 돌멩이와 큰 차이가 없는 우연의 산물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도 DNA의 발견에서 시작됐다. 이런 사고를 통해 우리는 지배자가 아닌 동반자로서 지혜롭고 겸손하게 된다.
△최=DNA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양자역학을 술자리에서 떠들 수는 없지만 DNA는 가능하다. DNA는 대중이 과학에 접근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 DNA를 공부하면서 많이 겸허해졌다.
△서=앞으로 게놈 연구가 어디로 갈 것인지 논의해 보자. 세 가지 방향이 있다. 생명현상의 이해, 무병장수를 위한 미래의학, 사회 전반적인 바이오 시대이다.
△유=생명과학 연구는 앞으로 2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하나는 유전자를 통합 연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전자가 만든 단백질이 세포에서 어떤 기능을 하느냐에 대한 연구다. 인간의 유전자는 대략 3만5000개다. 그것으로부터 20만개의 단백질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수많은 단백질들이 어떻게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지 모두 알게 되면 가상 공간에서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최=인간 유전자가 3만5000개밖에 안되고 초파리의 유전자보다 별로 많지 않다고 해서 자존심 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식물 유전자는 인간보다 훨씬 더 많다. 유전자의 숫자가 아니라 유전자의 네트워킹과 활동성이 중요하다. 인간 유전자는 하나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다른 유전자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유전자는 참 바쁘다.
△서=3만5000개 유전자의 기능과 네트워킹을 다 알면 질병 치료에 새 돌파구가 열린다. 어떤 약이 신체의 어떤 부분을 제어하는지 분자 수준에서 알게 되면 신약 개발에 엄청난 힘이 된다. 미래에는 예측 의학이 발전할 것이다. 병은 환경과 유전자가 서로 얽혀 생긴다. 천식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면 병이 나기 전에 환경을 바꿔준다.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카펫은 쓰지 말고, 스트레스는 피하는 식이다. 이것이 무병장수로 가게 한다.
△유=생명과학이 재미있는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다. 가끔 신문 스포츠 면에 실리는 오늘의 운세를 볼 때가 있다. 아침에 DNA나 소변 검사를 하면 ‘당신은 오늘 컨디션이 나쁘니 협상은 미루세요’ 같은 메시지가 뜨지 않을까. 수많은 실시간 건강 정보가 시시각각 스팸 메일처럼 성가시게 할 지도 모른다.
△서=DNA를 통해 몰랐던 인류의 진화와 이동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얼마 전 몽골에 갔는데 그곳 사람들이 너무 한국인과 비슷했다. 같은 인종이기도 하겠지만 혹시 고려 시대에 몽골에 잡혀간 우리 조상의 후손이 아닐까. DNA를 조사하면 이런 사실을 밝힐 수 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진화됐다는 사실도 DNA연구에서 나온 것 아닌가.
△최=사실 인간의 DNA 안에는 생명의 모든 역사가 다 들어 있다. 질병 유전자를 건강한 유전자로 바꿔 끼는 유전자 치료와 관련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다. 한 유전자가 여러 역할을 하는 있는데 질병을 일으킨다고 빼내는 것은 자칫 선무당 짓이 되지 않을까.
△서=맞다. 생명 현상을 이해할 때는 균형 잡힌 시각이 있어야 한다.
△최=‘유전자 성형수술’도 상상할 수 있다. 의사가 태아의 DNA를 보여주면서 “이 유전자만 조금 바꾸면 몸매가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면 안 넘어갈 부모가 없다. 너도나도 좋다는 유전자를 원할 것이다. 한국은 더할 것이다. 복제 인간을 따로 안 만들어도 그 유전자만 놓고 보면 다 복제 인간이다. 진화는 유전적 다양성을 늘리는 것인데 유전자 성형은 다양성을 줄인다. 개인은 좋아지지만 집단은 약해지는 엄청난 모순에 빠질 수 있다.
△유=영화 ‘가타카’와 비슷한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유전자 성형 없이 태어난 아이를 ‘신의 아이들’이라고 부르는데 맞춤형 아기는 ‘인간의 아이들’이라는 개념이다. 그 표현이 참 의미심장하다. 신이 열성 유전자를 줬다면 그에 상응하는 지혜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유전자 성형을 마구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요즘 얼굴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걸 보면 유전자 성형도 꽤 하지 않을까.
△유=그걸 막기 위해 생명윤리가 필요하다. 선진국은 생명윤리에 대한 연구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 과학자도 생명윤리에 관심을 갖고 일반 사람들에게 홍보를 해야 한다.
△서=나는 가장 불안정한 시기가 가장 위대한 시기다라는 말을 믿는다. 위험은 분명히 있지만 그 때문에 문을 닫고 과학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경고는 계속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과학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20세기는 이성, 21세기는 영성의 시대라고 흔히 한다. 앞으로 생명 과학이 발전하면 인간의 정신 생활은 어떻게 될까.
△유=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의지가 맞춤형 아기의 의지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본인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마인드’의 문제다. 그러나 마인드가 유전자에 얼마나 좌우되는 것인지 늘 궁금하다.
△서=개인적으로 몸의 문제를 넘어서면 영혼의 문제가 나오고 그것이 종교라고 본다. 몸의 문제는 과학이 해결할 것이다. 영혼의 문제는 종교의 영역 아닐까.
△최=만일 복제 인간이 목사님을 찾아가서 하나님을 영접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은 신이 만든 인간이 아니므로 영혼을 줄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므로 받아들여야 할까. 나를 복제한 인간은 뭔가 나와 다른 영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나는 그것이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유전자가 아무리 똑같아도 영혼은 복제될 수 없다.
△서=게놈 연구를 통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유전병 치료다. 이 세상에는 유전병으로 고통을 받는 환자들이 많다. 게놈 연구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어느 시처럼 세상살이가 소풍이고, 소풍을 함께 즐기지 못하는 유전병 환자들을 과학을 통해 감싸안고 함께 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과학과 종교가 화합할 수 있다.
△유=동감한다.
▼생명공학 발전시키려면▼
△서=우리는 계획 경제에 ‘계획 과학’이었다. ‘위에서 아래로’다. 이제 ‘아래에서 위로’가 돼야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뛰어난 과학자를 찾고 거기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공무원들이 외국에서 잘 나가는 분야를 선정해 투자하겠다고 하면 갑자기 수백 명의 전문가가 나타난다.
△유=한국 과학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기업이 안 하니까 정부가 나서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기초 기술보다 자꾸 응용 기술로 가려고 한다.
△최=만일 정부가 기초에만 전념하면 기업이 응용 기술을 개발할까.
△유=안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기업에 이익이지만 기업은 길게 못 본다. 몇 년 전 삼성이 2조원을 생명과학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해 놓고 결국 투자를 못했다.
△최=과학기술부나 산업자원부 장관이 기업체 대표를 만나 계속 설득했으면 좋겠다.
△서=게놈 시대에는 의사 연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매년 의대 졸업생 10%정도가 연구전임 의사가 돼야 한다. 지금은 기초의학이 붕괴됐다. 요즘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에 많이 가서 문제인데 그들을 연구자로 끌어와야 한다.
△유=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예산은 성과를 바라고 배분하면 안 된다. 연구는 다리 놓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실패할 수 있다. 실패해도 배운다. 만일 연구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과제만 내면 아무런 발전이 없다.
△최=그것이 바로 DNA가 만든 진화다. 진화는 다양성을 추구한다. 기초를 골고루 발달시켜 놓아야 환경이 변할 때 대응할 수 있다. 대가 없는 연구할 때 손해도 보지만 효자도 나온다.

정리=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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