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英케임브리지대 학장과 조완규 박사 대담

  • 입력 2002년 11월 5일 18시 17분


대담 중인 에카르트 살제 케임브리지대 학장과 한국생물산업협회 조완규 회장. - 강병기기자
대담 중인 에카르트 살제 케임브리지대 학장과 한국생물산업협회 조완규 회장. - 강병기기자
《케임브리지대는 옥스퍼드대와 더불어 영국의 양대 명문 대학교이다. 옥스퍼드대가 인문사회과학이 강한 반면 전통적으로 자연과학에 강한 케임브리지대는 무려 6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공계 명문 중의 명문대학이다.

케임브리지대 클레어 홀 칼리지의 에카르트 살제 학장이 28∼29일 서울에서 열린 제3회 한·영 산업기술협력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다. 살제 학장은 수학 및 물리학자로, 광물이나 전자부품의 미세구조에 대한 연구로 유명하다.

66년에 설립된 클레어 홀 칼리지는 국제화를 지향하는 특색 있는 칼리지로 150여명의 학생 가운데 75%가 외국 학생이다.동아사이언스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연구를 했던 조완규 한국생물산업협회 회장(전 서울대 총장, 교육부 장관)과 살제 학장을 초청해 케임브리지대가 어떻게 해서 이공계 명문대학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지에 대해 좌담을 가졌다.》

▽조〓영국은 무려 8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살제〓다른 나라에는 없는 대학 교육 제도인 칼리지(college)를 두고 있는 것이 큰 강점이다.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학생은 누구나 학과 중심의 유니버시티와 생활 중심의 칼리지에 속하게 되어 있다. 교수는 유니버시티의 학과에서 보통 10명의 학생을 전공지도하고, 칼리지의 교수로서 전공과 관계없이 4명의 학생을 생활 지도한다. 운 좋은 학생은 노벨상 수상자의 생활 지도를 받는다.

▽조〓한국의 대학과 영국의 대학이 크게 다른 점은 칼리지이다. 또 한국은 총장의 권한이 강하지만 영국은 칼리지 학장의 거의 모든 결정을 한다고 하는데.

▽살제〓대학 신입생도 칼리지가 뽑고 나중에 각 학과에서 이들을 데려가게 된다. 칼리지에 속한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는 동료 및 교수들과 일상적으로 토론과 세미나를 하면서 여러 분야를 두루 이해하고 점차적으로 전공을 선택한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도 케임브리지대의 칼리지에 속한 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칼리지 세미나에서 “지금 우리가 연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많은 사람들이 유전물질의 구조라고 답하자 이 연구에 뛰어들어 결국 노벨상을 탔다. 요즘의 중요한 발견은 대부분 학문과 학문이 만나는 경계 영역에서 나온다. 칼리지는 학문 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활발한 정보 교환을 가능케 한다.

▽조〓한국은 해방 후 학과 중심의 미국식 대학 제도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국식 제도가 우리에게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교수가 20여명씩 학생을 지도하는 한국 대학의 실정에서는 영국식 칼리지를 도입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살제〓케임브리지대의 또 다른 중요한 전통은 조직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개인이 조직에 얽매여 있는 것 같다. 케임브리지대에서는 능력이 있으면 어떤 연구 영역이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수학과 물리학을 연구했지만 지구과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또 내가 아는 유명한 수학과 교수는 신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조〓한국에서는 성적에 따라 대학 신입생을 선발한다. 케임브리지대는 어떻게 학생과 교수를뽑나?

▽살제〓전세계를 대상으로 최고의 교수와 최고의 학생을 뽑으려고 노력을 집중한다. 우리는 학생의 고교 성적보다 이들이 얼마나 잠재력과 창의력을 갖고 있는지를 더 평가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인터뷰이다. 한 명의 지망생을 상대로 각각 3명의 교수가 1대1로 인터뷰를 해서 학생을 선발한다. 외국 학생을 뽑을 때에는 그 나라에 직접 교수를 보낸다.

▽조〓케임브리지대가 대학 발전을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개혁하고 있는 것은?

▽살제〓강의위원회의 활동이 대학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모든 강의에 대해 위원회가 구성돼 보통 매년 5번 회의가 열린다. 칼리지 소속 교수는 학생의 면담을 토대로 강의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 강의 담당 교수에게 넘긴다. 그러면 강의를 맡은 교수는 개선된 강의 계획서를 위원회에 제출하고 토론을 거쳐 강의 개선 방향을 결정한다.

▽조〓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자유롭게 특허를 신청하고 벤처기업도 설립할 수 있나?

▽살제〓물론이다. 강의와 연구만 충실히 하면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케임브리지대 주변에는 1200개의 첨단 정보·생명공학 기업 등이 입주한 사이언스 파크가 만들어져 3만50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케임브리지대 교수보다 훨씬 부자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 얼마 전에는 이를 다룬 ‘케임브리지 현상’이란 책이 나오기도 했다.

▽조〓한국에서는 87년 민주화 이후 대학마다 2명의 후보를 직선제로 뽑아 대통령이 이 중 한 명을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분파가 형성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에는 이런 문제가 없나.

▽살제〓선발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전세계 대학과 잡지 등에 광고를 해 전직 수상, 기업인, 교수 등 이름 있는 인물을 후보로 선정한다. 현재 총장도 IBM에서 연구소장을 했던 호주 출신의 학자이다. 사전 선거운동을 한 후보는 교수들이 절대 뽑지 않는다. 나도 통보를 받고 난 다음에야 학장이 된 줄 알았을 정도다.

정리〓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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