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파문에 고개숙인 업체들 "벤처가 부끄러워…"

  • 입력 2000년 11월 5일 18시 36분


“벤처기업요? 우리는 벤처 아니에요….”

최근 한국디지탈라인(KDL)사건으로 벤처 이미지가 땅에 추락하면서 ‘베드로’처럼 스스로 벤처기업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번지고 있다. ‘벤처기업을 하고 있다’고 밝혀봤자 주위의 시선이 따갑기 때문이다. 올초만 해도 ‘벤처기업을 한다’면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것과는 180도 바뀐 상황이다.

벤처기업인 L사장은 “젊은 벤처기업인의 타락상을 개탄한다”고 표현한 대통령의 발언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정현준 그 사람이 어떻게 벤처기업인입니까? 머니게임에만 집착하는 사람을 벤처기업인이라니 정말 말도 안됩니다.”

허울만 좋은 ‘무늬 벤처’와 ‘진짜 벤처’를 구별하지 않는 세태가 불만인 한 임원은 아예 벤처기업의 정의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술로 승부하는 기업만을 벤처기업으로 부르자는 것. 그러나 이 정의대로라면 벤처기업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에 소속된 기업중 상당수는 벤처기업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자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KDL이요? 그 회사도 벤처입니다. 무조건 아니라고 우기는 식은 곤란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S사 O사장)

사실 그동안 벤처업계에선 ‘부끄러운’ 일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심지어 일부 중견 벤처기업인은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방법을 후배 벤처인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녀 눈총을 사기도 했다. 한 인터넷 벤처기업인은 “법과 제도 등 타율에 의해 통제를 받기전에 벤처인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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