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봉교수 '인슐린펌프' 치료기로 美 FDA 첫 승인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37분


1980년2월23일 서울대병원의 전공의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공췌장인 ‘인슐린 펌프’를 개발했다는 쾌거가 본보 사회면에 특종 보도됐다. ‘그때 그 전공의’인 건국대 충주병원 최수봉(崔秀峰·49)교수가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당시 개발한 인슐린 펌프 ‘다나’의 사용 및 판매 승인을 받았다. 국산 진단 및 치료보조기가 FDA의 승인을 받은 적은 있지만 본격 치료기로는 최초의 일이다.

최교수는 인슐린펌프의 개발은 먼저 했지만 FDA 승인 경쟁에선 선진국에 뒤져 네 번째로 승인받았다. 그러나 ‘다나’는 1987년 첫 FDA 승인을 받아 현재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미국 미니메드사의 제품보다 여러 점에서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우선 조작이 간편하고 무게도 60g으로 미니메드 제품보다 40%나 가볍다. 방수가 잘돼 환자가 펌프를 찬 채 수영과 목욕을 즐길 수도 있다. 값도 190만원으로 5000∼7500달러인 미니메드 제품의 3분의 1 정도. 이 때문에 FDA 승인 직후 각국으로부터 판권이나 회사를 팔라는 등의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최교수는 당뇨병 환자가 의사의 치료 지침을 충분히 따르는데도 합병증으로 숨지는 현실에 고민하다 당시 외국에서 개발 논의가 진행 중이던 인슐린펌프의 개발에 착수해 외국에서 보다 먼저 성공했다.

그는 80년대 초 혼자서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부품을 사 인슐린펌프를 개발했고 가톨릭대 의대 해부학교수였던 아버지가 전세금 500만원을 빼내 차려준 의원급 병원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환자를 돌봐왔다.

‘교과서에 있는 치료법’을 강조하는 의료계는 그의 인슐린펌프 치료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90년대 초엔 학회에서 스승에게 ‘왜 환자 중심이 아니고 교과서 중심으로 진료해야만 하느냐’고 따졌다가 서울대의대 내분비내과 동문회에서 제명 당하는 등 의료계의 ‘왕따’가 돼야만 했다. 그래도 그는 굽히지 않고 20년간 3만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최교수는 현재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충북 충주시 목벌동의 충주병원 당뇨병센터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의료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도 환자 돌보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열흘 정도 입원치료를 받으며 자신에게 맞는 인슐린 펌프 사용법을 배워 나간다. 외국에서도 매년 100명 정도가 온다. 환자들은 제대로 식사를 하면서도 당뇨병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대한축구협회 권오상(權五相·66)부장은 “월드컵 준비로 한창 바빴던 98년초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발목을 잘라야 한다고 진단받았지만 최교수 덕분에 현재 정상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교수의 조사결과 3, 4개월 뒤 환자의 34%가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초기에 치료받으면 80%가 치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학회에서도 요즘엔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는 서구와 달리 비(非)비만형이 많아 무조건 절식(節食)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등 20년 전 제가 주장했던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인슐린 펌프를 쓰는 병원도 늘고 있습니다. 조금 일찍 인정을 받았다면, 더 많은 환자가 치료혜택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충주〓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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