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화석 무더기 발견]한반도 곤충 '1억년 잠' 깨다

  • 입력 2000년 9월 20일 18시 56분


수억 년 동안 곤충은 지구의 주인이었다. 지금도 지구상의 동물종 가운데 6분의 5는 곤충이다. 그러나 이들이 화석을 남기는 일은 좀처럼 없다. 곤충은 뼈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두 교사가 1억 년 동안 잠자고 있던 700여 마리의 곤충을 긴 잠에서 깨웠다. 이들은 이 공로로 다음 달 5일 전국과학전람회 대통령상을 받는다. 이번에 발견된 곤충은 30종에 이르고 날개맥과 다리의 털까지 매우 선명해 곤충의 진화를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 양승영교수(지질학)는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곤충화석이 이처럼 많이 발견됐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벌써 미국 캔사스대 박물관장이 화석을 보러 오겠다고 했고, 일본 기타규슈 박물관의 곤충 전문가들도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처음 곤충을 발견한 것은 97년 11월. 한국화석회 회원으로 몇 년 째 활동해 오던 대구고 이삼식 교사와 경북고 김기본 교사는 이날 회원들과 함께 야외 답사를 나갔다가 남해고속도로 진주인터체인지 부근 택지개발 현장의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 곤충 화석을 처음 발견했다. 경상도에 주로 분포하는 이 지층에서는 그 동안 공룡의 뼈와 발자국이 많이 나왔다. 두 교사는 그 후 지층을 샅샅이 조사해 경상도 내 7곳에서 매미 잠자리 벌 딱정벌레 파리 귀뚜라미 등의 곤충 화석을 찾아냈다.

화석이 되려면 몸에 단단한 부분이 있어야 하고, 썩지 않게 빨리 매몰되어야 하며, 퇴적암의 입자가 고와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화석이 발견된 셰일층은 점토가 굳어져 만들어졌기 때문에 곤충의 날개까지 생생하게 기록됐다. 김기본 교사는 “이 지역에서 잠자리 같은 수서곤충이 많이 나왔고, 헤엄칠 수 있는 다리를 가진 곤충, 어류와 물풀 화석이 같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이곳은 호숫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발견된 1억 년 전의 곤충들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잠자리 사마귀 바퀴. 사마귀는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는 세계 최초로 발견됐고, 잠자리는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나왔다. 이 중 잠자리는 현재의 잠자리와 날개맥이 거의 일치해 ‘화석 생물’이란 이름을 실감나게 했다. 반면 사마귀와 바퀴벌레는 날개맥이 요즘의 곤충과 달라 진화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다.

곤충은 약 4억 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에 지구상에 등장해 그 일부는 3억 년 전인 석탄기에 날개를 가진 곤충으로 진화했다. 곤충의 날개는 원래 잠자리처럼 글라이더형이었지만, 나중에는 벌, 파리처럼 접을 수 있는 날개를 가진 곤충들이 등장했다.

영남대 생물학과 이종욱 교수는 “잠자리는 약 3억 년 전까지 날개의 길이가 70㎝나 되는 대형이었지만 중생대에 접어들면서 크기가 줄어 오늘날의 잠자리처럼 작은 곤충으로 진화했다”며 “이번에 발견된 화석은 잠자리의 진화가 대부분 백악기 이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잠자리는 지금도 글라이더 같은 원시적인 날개를 갖고 있어 ‘화석 생물’로 불린다. 하지만 잠자리가 다른 곤충보다 열등하다고는 볼 수 없다. 잠자리는 헬리콥터처럼 공중에서 멈출 수도 있고, 뒤로도 날 수 있다. 잠자리는 이런 묘기 비행을 하면서 자신보다 훨씬 진화한 날개를 가진 모기를 30분만에 자신의 몸무게만큼이나 먹어치운다. 잠자리가 진화의 무대에서 사라졌다면 극성을 부리는 모기와 이로 인한 전염병 때문에 인간은 이미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화석생물이란?▼

1938년 12월 22일은 고생물학의 역사에서 경악의 날로 기억되고 있다. 3억6천만년 전에 나타나 6천5백만년 전 공룡과 함께 멸종한 것으로 생각했던 실러캔스라는 물고기가 남아프리카공화국 근해에서 뜻밖에 산채로 그물에 걸려 올라왔던 것이다.

이 물고기처럼 수억 년 전 또는 수천만 년 전에 나타나 지금까지 모양이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살아있는 생명체를 ‘화석생물’이라고 한다.

전체 생물의 90%가 사라진 2억5천만년 전 고생대 페름기의 대멸종을 비롯해 수많은 재앙이 지구를 휩쓸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들은 매우 경이로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화석생물이 실러캔스처럼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나무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2억7천만년 전의 화석에서도 거의 같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혐오의 대상인 바퀴도 약 3억 년 전에 나타나 놀라운 적응력과 민첩함으로 인류와 함께 번성하고 있다. 우리가 즐겨먹는 나물인 고사리도 한 때는 지상을 뒤덮었던 양치류의 후손이다.

상어도 4억년 전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낸 뒤 오랜 진화를 거쳐 지금은 바다물고기 중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을 갖추었다. 가장 오래 된 화석생물은 원시남조류인 시아노박테리아이다. 이 박테리아는 지구상 최초의 생물로 약 35억 년 전에 나타나 7억 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생각됐으나, 30여년 전 호주의 근해에서 군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게 발견됐다.

직립인간이 처음 나타난 때가 대략 400만년 전이고, 현 인류의 직계조상이 겨우 15만년 전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지구상에서 얼마나 낯선 존재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기자> alchimist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