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병원시대/소아정신질환]『우등생돼라』압박 스트레스

  • 입력 1996년 11월 24일 20시 14분


「羅成燁기자」 자폐증이나 정신박약아처럼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이 있는 장애아를 제외한 대부분 어린이 정신질환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어린이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부모와의 갈등이다. 「아이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잘 키우려면 엄하게 다뤄야 한다」며 애정표현을 게을리 하면 모든 것을 부모에 의존하는 10세 이전의 아이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부모 사이가 좋지 못하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위기감을 느낀다. 또 부모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우등생」을 강요할 때 아이는 「공부를 못하면 나는 버림받는다」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스트레스장애를 일으킨다. 홍강의 서울대교수(소아정신과)는 『가정문제 때문에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는 전체의 5∼10%나 된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대개 의사표현이 서투르기 때문에 행동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불안 우울 초조증세를 보이며 말수가 갑자기 줄고 밤잠을 설친다. 툭하면 끼니를 걸러 꾀병을 부리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 아이가 신경성 두통이나 복통 설사 위궤양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유숙박사(소아정신과)는 『윗사람의 말은 무조건 들어야 하고 아랫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가정 분위기가 어린이 정신질환을 일으키는데 한 몫 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애정표현도 문제다.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고 아이가 잘못해 주위사람이 나무랄 때도 무조건 자식편에만 서면 아이는 「자기통제」를 하지 못한다. 좋고 나쁜 것과 아름답고 추한 것에 대한 가치관이 생기지 않아 폭력성향을 갖게 되고 결국에는 비행청소년으로 자란다.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질환은 스트레스장애. 영어 컴퓨터 음악학원을 쉴새없이 뛰어다녀야 하고 다른 아이보다 나은 성과를 요구하는 부모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같은 증상이 많다. 아이 하나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부모 입장에서는 「다소 아이가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여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어린이 정신장애의 이런 특성 때문에 전문의들은 상담과 치료를 할 때 반드시 부모가 자리를 함께 하도록 요구한다. 취학전 아동의 경우 부모를 치료하면 자연적으로 병이 낫는 경우가 많다. 증세가 심할 때는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최근에는 장난감 놀이를 하며 아이의 심리를 파악하는 「놀이치료」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 소아정신과가 본격 도입된 것은 80년대초. 홍강의교수가 서울대병원에 「소아정신분과」를 만들면서 각 대학병원과 개원가에 소아정신과가 생겨나기 시작, 현재 50여명의 전문의가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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