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1〉묵자의 절장(節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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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장례의 도(道)에 다소 과도하게 집착했다. 그의 십대제자, 즉 공문십철(孔門十哲) 중 하나인 재아(宰我)가 부모의 3년상이 너무 긴 것 같으니 1년으로 줄이자고 제안하자, 불같이 화를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질지 못한 자로구나. 자식은 모름지기 태어났을 때부터 3년이 지나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는 법이다. 3년상은 온 세상의 공통된 예법이거늘, 저도 부모한테서 3년 동안 사랑을 받았으면서 저렇게 말하다니!”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리가 있는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공자에 대한 더 강력한 도전은 그의 제자가 아닌 묵자에게서 나왔다. 공자가 세상을 떠날 무렵 태어나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묵자는 공자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례의 도를 “천하를 망치는 유가(儒家)의 네 가지 도(道)” 중 하나라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는 절장(節葬), 즉 검소한 장례를 선호하고 시간도 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가난한 사람들이 3년상을 치르려면 살림을 탕진할 것이다. 농부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것이고 공인(工人)들은 “수레와 배를 수리하거나 그릇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천자(天子)나 제후들이 죽으면 수백 명 내지 수십 명, 장군이나 대부(大夫)가 죽으면 수십 명 내지 수 명”의 아랫사람들이 때로는 산 채로, 때로는 죽임을 당해 순장(殉葬)될 것이다. 아랫사람의 목숨도 윗사람의 것과 똑같은 사랑, 즉 겸애(兼愛)의 대상이거늘, 죽은 자를 위해 산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처럼 묵자는 장례에서조차 권력자에게 휘둘려야 했던, 힘없는 약자들의 상처와 눈물을 먼저 생각했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 공자가 강조한 과도한 장례는 효라기보다 ‘천하를 망치는’ 폭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묵자에게는 부모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불필요한 것이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에게 애도는 애도 기간의 길고 짧음이나 화려한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을 따름이다. 호화스러운 장례를 치른다고 더 슬퍼하는 것도 아니고, 검소한 장례를 치른다고 덜 슬퍼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것은 그때로부터 몇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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