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31>언어의 의미는 변해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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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야위다/여위다 vs 여의다

‘여위다’와 ‘야위다’는 같은 의미의 말이다. 모두 ‘수척하다, 파리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국어에는 모음 차이만으로 작은 말, 큰 말의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야위다’ ‘여위다’도 그중 하나다. ‘야위다’에 ‘조금’이라는 느낌이 들어 있는 것이다.
 
한동안 못 보았더니 몰라보게 여위었네.
한동안 못 보았더니 조금 야위었네.


그런데 이 단어들을 ‘여의다’와 혼동하는 일이 많다. 발음이 비슷해서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여의다’는 의미가 전혀 다른 단어다. ‘여의다’는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별하였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단어의 의미가 조금 복잡하다.
 
일찍이 부모를 ①여의고 자수성가한 사람이래.
딸 셋 ②여의면 기둥뿌리가 팬다.
 
①번이 ‘부모가 죽어 이별하다’의 의미를 가진 것이다. 그런데 ②의 ‘여의다’는 죽음과 전혀 관련이 없다. 딸이 죽었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이 단어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의미를 알기 위해 이 문장 속 ‘팬다’의 의미부터 짚어보자. 동사나 형용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기본형을 잡는 것이 좋다고 했다. 기본형은 ‘파이다’다. ‘파다’에 ‘-이-’가 붙은 것이다. ‘파다’는 스스로 파는 것이고, ‘파이다’는 주어의 의도 없이 다른 상황에 의해서 ‘파진다’는 의미다. 딸 셋을 어떻게 하면 기둥뿌리가 파이는 것일까? 이런 방식으로 ‘여의다’의 의미가 추출된다.

‘여의다’는 딸을 시집보낸다는 의미다. 딸을 결혼시키는 것의 경제적 부담을 여실히 보여주는 속담이다. 비슷한 속담으로 ‘딸 삼형제를 여의면 좀도둑도 안 든다’는 말도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여의다’의 이런 의미 구분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 당연하다. 죽음과 관련된 ‘여의다’도 그들에게 낯선 말이다. 거기에 더하여 출가(出嫁)를 의미하는 단어까지 구분해야 한다니 당황스럽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황스럽다고 맞춤법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전에 그 당황스러움을 관련 질문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왜 ‘딸을 시집보내는 것’만을 ‘여의다’라고 하는 것일까? 이 단어의 뜻이 전통적 의미의 시집보낸다는 것과 관련됐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든, 전통적 의미의 ‘딸을 시집보내는 것’의 공통된 점은 ‘멀리 떠나보낸다’는 의미다.

‘여의다’의 전혀 다른 두 가지 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의 이별’과 ‘출가시킴으로써 생기는 이별’이 하나의 단어 안에 녹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의다’라는 단어에는 ‘멀리 떠나보내다’의 의미가 들어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딸을 시집보내다’라는 의미의 ‘여의다’는 점점 사용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쓰인 ‘딸의 결혼으로 인한 이별’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그러니 ‘여의다’라는 단어의 쓰임 역시 이전과는 다른 질서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딸을 시집보내는 일’에 ‘여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여의다#야위다#여위다#언어의 의미는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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