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10월 28일] 세상에 종말이…1992년 다미선교회 휴거 소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7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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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옥수동에 있던 J교회에서 ‘휴거 예배’를 드리고 있는 신도들.
성동구 옥수동에 있던 J교회에서 ‘휴거 예배’를 드리고 있는 신도들.

‘아재’ 테스트 하나를 해보자. ‘휴거’는 무슨 뜻일까. ①휴먼시아에 사는 거지 ②세상에 종말이 찾아오는 것

충격적이게도 요즘 일부 사람들은 휴거를 ①이라는 뜻으로 쓴다. (휴먼시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지은 국민임대주택단지 브랜드 이름이다.) 하지만 1990년대를 몸소 경험한 이들에게 휴거는 역시 종말론이다.

‘라이프성경사전’에 따르면 휴거(携擧)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시 주를 믿고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하고, 그때까지 살아 있는 성도들이 육체의 변화를 받아 공중으로 들어올려져서 주를 만나게 되는 종말적인 사건’을 뜻한다.

이 풀이만 보면 신학과 시험에나 어울릴 법하지만 비기독교도 독자 중에서도 이 낱말을 알고 계신 분들이 적지 않을 거다. 19992년 다미선교회 ‘휴거 소동’을 지켜봤기 때문. 이 선교회는 1992년 오늘(10월 28일) 자정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휴거 소동 후유증이 우려된다고 보도한 1992년 10월 29일자 동아일보
휴거 소동 후유증이 우려된다고 보도한 1992년 10월 29일자 동아일보

이 소동이 끝난 뒤 다미선교회는 11월 2일 각 신문에 사과 광고를 게재하는 한편 그달 10일까지 헌금 반환 신청을 받겠다고 밝혔다. 해산 당시 이 선교회 신도 숫자는 약 8000명 수준이었으며, 보관하고 있는 헌금은 25억 원 가량이었다.

1992년 11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다미선교회 사과 광고
1992년 11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다미선교회 사과 광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표현에서 이름을 따온 이 선교회를 이끌던 건 이장림(당시 45·개명 후 이답게) 목사였다. 그는 1999년 세상이 멸망할 것인데 ‘요한계시록’에 7년 동안 짐승이 지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1992년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날짜를 10월 28일로 특정한 건 이 목사가 ‘어린 선지자’로 지목한 H군이었다. (H군은 나중에 정식 신학 교육을 받은 목사가 됐다.)

그래도 이 목사가 ‘확신범’이었다면 휴거를 믿고 그에게 돈과 시간을 가져다 바친 이들이 덜 억울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목사 본인은 휴거를 믿지 않았다. 휴거 예정일을 한달 가량 앞둔 그해 9월 24일 마약 복용 혐의로 검찰에 붙잡힌 그는 “사실은 나도 10월 28일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는 않다”고 실토했다.

다미선교회 이자림 목사 체포 소식을 전한 1992년 9월 25일자 동아일보
다미선교회 이자림 목사 체포 소식을 전한 1992년 9월 25일자 동아일보

심지어 수색 결과 이 목사 집에서 1993년 5월 22일이 만기인 3억 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이 나오기도 했다.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발생할 것이라고 믿었다면 이런 투자를 할 리가 없었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나는 이번 10월 28일의 휴거 대상자가 아니고 ‘환란시대’에도 지상에 남아 순교해야 할 운명”이라며 “이 돈은 그때 활동비로 쓰려고 준비해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검찰은 이 목사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고, 법원은 그에게 징역 1년과 2만6000달러 몰수형을 내렸다.

이렇게 휴거 소동이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으니 당시 이 선교회 신도 모두 일상 생활로 돌아갔을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에서 펴내는 월간지 ‘현대종교’에 따르면 이 목사는 또 다른 선교회를 조직해 활동 중이며, 여전히 종말론을 믿는 이들은 그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종교뿐 아니라 천제물리학 같은 과학 분야에서도 언젠가 우주가 생명을 다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매일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겸허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태도도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종말론은 앞세워 돈이나 성(性) 등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그 사람과 관계를 끊는 게 구원을 얻는 길이 아닐까.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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